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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세 번 구르고 이르시되

가을물 긴 하늘이
아득히 짙푸른데
흰 갈대꽃에
밝은 달이 오가니
모두가 비로자나요
온갖 것이 화장세계 일러라
秋水長天
上下圓融
一色노花
明月往來
頭頭毘盧
物物華藏

이 어떠한 사람의 경지인가, 이 모두 여러분들의 경지요 또한 수도하는 사람들의 경지로다. 이 경지에 이르러 활발하고 멋있게 살아야지,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 생활을 하면 되겠는가. 대중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고, 이것을 쥐면 주먹이라 하고 펴면 손바닥이라 한다.

둘 곱하기 다섯은 원래로 열이라
여기에 누가 능히 의심이 없겠는가
이 밖에 다시 오묘함을 찾는다면
이미 틀린 일일세
二五元來十
無疑者是誰
更求玄妙處
已落第二頭

 


 하나씩 손가락을 세며 하나, 둘, 셋... 다섯. 그리고 왼손도 다섯 손가락, 합하면 열이다. 손가락 모양은 누구나 같고 다 똑같다. 주먹을 쥐면 오악(五嶽, 다섯 산봉우리)이 뒤집히고, 펼치면 오악이 참치(參差)하다. 참치는 길고 짧은 것이 가지런하지 않다는 뜻이다.

눈, 귀, 코, 혀, 몸, 그리고 뜻. 이 여섯 가지를 '여섯 도둑'이라 부른다.  
눈은 온갖 것을 보려 하고,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좋은 것을 탐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눈을 '눈 도둑놈'이라 부른다. 귀는 사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 등 모든 소리를 들으려 하고, 코는 온갖 좋은 향기를 맡으려 한다. 혀는 다양한 맛을 즐기고 싶어 하며, 몸은 좋은 촉감과 옷을 탐한다.

과거 어떤 부인이 옷에 욕심이 많아 외출할 때는 항상 낡고 더러운 옷만 입었지만, 옷장 속에는 새롭고 화려한 옷들로 가득 채워놓았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옷장을 열어보니 고운 옷들뿐만 아니라 한 번도 신지 않은 버선도 잔뜩 있었다. 생전에는 낡은 옷과 헤어진 버선을 아끼며 지냈지만, 정작 죽은 뒤에는 그 좋은 것들을 누가 입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는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허무하고 어리석은지를 잘 보여준다.

뜻 도둑은 모든 것을 분별하며 욕심을 낸다. 그러나 이 여섯 도둑을 잘 교화하면 다음과 같이 변할 수 있다.  
눈 도둑은 일월광명세존(日月光名世尊), 귀 도둑은 성문여래(聲聞如來), 코 도둑은 향적여래(香積如來), 입 도둑은 법회여래(法會如來), 몸 도둑은 비로자나(毘盧遮那), 뜻 도둑은 부동광명여래(不動光明如來)가 된다. 결국 여섯 도둑이 여섯 부처로 거듭나는 것이다. 여섯 부처를 갖춘 사람은 완전한 인격체로 성장한 상태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도인의 삼매는 몇 잔의 차요
무사의 생애는 한 자루의 칼일러라
道人三昧茶三食复
武士生涯劍一柄
 

설법을 듣고 마음에 불순물이 남아 있다면 이를 깨끗이 씻어 내야 한다. 순수한 경지, '무구(無垢)'에 이르러야 한다. 예를 들어 금을 캐면 순금 덩어리도 있고 다른 잡금들이 섞인 경우도 있다. 이 잡철들을 모두 제거해 24K 순금으로 만들어야 세상 어디서든 인정받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도 남을 해치려 하거나 속이려는 잡념들이 섞여 있다면 이를 모두 버려야 한다.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다.  
옛날 도겸(道謙)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20년 동안 참선을 했지만 공부의 성과가 미미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스무 해 동안 온 산을 넘으며 선지식을 찾아다녔음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올해도 다를 게 없지 않겠는가. 내가 아무리 먼 길을 떠난다 해도 별반 나아질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그는 서글프고 쓸쓸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렸다.

그와 동행하던 종원(宗元)이 묻는다.  
"왜 우는 거냐?"  
"난 이제 그만 갈까 한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수많은 선지식을 친견했어도 아무런 깨달음이나 소득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괜히 갈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떠날 생각이었다가 이제 와서 안 간다니, 대체 무슨 말이냐? 그렇다면 내 말을 들어 보아라. 네가 지금 선지식을 만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고, 네가 배운 것을 떠올리지도 말아라. 그냥 네 안에 있는 다섯 가지만 제대로 알면 된다. 그것을 잘 살피도록 해라."  
"다섯 가지라니, 그게 무엇인가?"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 대·소변을 보는 것, 그리고 이 산 송장을 이끌고 길 위로 다니는 일, 바로 그것이 다섯 가지다. 이것들만 알면 된다."  

그 말에 종원이는 문득 활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옷을 입고 지내더라도 옷을 입는 주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무엇이 작용하여 능히 옷을 입고, 무엇이 주관하여 밥을 먹으며 대·소변을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그것이 단순히 입의 역할만이 아니다. 음식을 삼키고 소화시키는 어떤 본체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또한 이 산 송장을 이끌고 길 위를 걸어 다니는 본질 또한 모른다.  

바로 이 다섯 가지를 알아보라는 말에 도겸은 마침내 도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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