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00:00

꿈이라는 것은 허망한 것이다.
꿈의 종류가 많이 있는데 신령한 꿈도 있고, 삿된 꿈, 헛된 꿈, 요란한 꿈, 망상의 꿈, 잡스러운 꿈, 놀라는 꿈, 슬픈 꿈, 길상의 꿈, 기쁜 꿈, 악한 꿈 등등이 있다.
망상이 없으면 꿈이 없는데, 하루 종일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것이 밤에 꿈으로 나타난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밤에 잠을 자야 할텐데 자다가 꿈 가운데 도둑에 쫓긴다든지 매를 맞는다든지 불이 나서 고함을 지른다든지 하여 잠도 편히 못 자고 소동을 벌인다. 이 모두 마음 가운데 망상을 비우지 못했기 때문이니 마음을 잘 비워야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고 연극한바탕 잘 할 수 있다. 망상 번뇌를 비우고 참된 생각, 바른 생각, 밝은 생각, 오묘한 생각을 지녀야 그렇게 되는 것이다.
꿈은 좋고 나쁘고 간에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옛날, 무주의 금화산에서 구지 선사가 수십 년간 좌선하며 홀로 도를 닦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한 여인이 갓을 쓴 채 들어와 구지 선사를 세 번 빙 돌더니 그대로 나가려고 했다. 이에 구지 선사가 여인에게 "멈추시오."라고 말하자 그녀는 대답했다.  
"내가 방금 돌며 행한 행동에 대해 당신이 한마디로 알린다면 머무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멈출 수 없습니다."  
구지 선사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고, 여인은 그냥 떠나버렸다. 평생을 도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신을 돌아본 구지 선사는 여인에게 모멸까지 당한 현실이 처참하게 느껴졌다. 그는 홀로 탄식하며 말했다.  
"평생을 공부했지만 한 여인만도 못하여 이렇게 수치심을 느껴야 하다니, 더는 살아갈 가치가 없다."  
그는 그날 저녁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희미하게 꿈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허공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육신보살이 와서 법을 전할 터이니 기다려라."  
육신보살은 우리처럼 육신을 가진 대보살이다. 죽기로 마음먹었던 그였지만, 이 기적 같은 말씀을 듣고는 하루 더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누군가를 만날까 하여 기대하며 기다리던 그 앞에 노장이 걸망을 메고 천천히 찾아왔다. 그가 바로 천룡화상이었다. 구지 선사는 기다리던 육신보살이 온 것이라 여기고 환영하면서 전날의 이야기를 상세히 설명했다.  
"어젯밤 꼭 죽으려고 했는데 허공에서 그런 말씀을 듣고 죽지 않았습니다. 이제 스님께서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이에 천룡화상은 말했다.  
"그럼 내가 그대와 함께 하면서 어제 그 여자가 했던 대로 재연해 보세."  

구지 선사가 갓을 쓰고 세 번 빙 돌다가 떠나는 척하자 천룡화상이 외쳤다.  
"거기 서시오!"  
"제가 이렇게 행한 것에 대해 한마디로 깨닫게 한다면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떠나겠습니다."  
그 순간 천룡화상은 손가락을 쑥 내밀었다. 이 단순한 행위로 구지 선사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참구하던 진리가 활짝 열리며 본성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구지 선사는 누구에게든 법문을 전할 때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나의 이 한 손가락 안에는 수많은 삼매와 무궁한 진리가 담겨 있다. 내가 천용화상에게서 한 손가락 선(一指禪)을 얻어 평생을 실천해도 그 뜻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누가 찾아와도 단지 손가락을 내보일 뿐, 그 외의 법문은 전하지 않았다.

어느 날, 먼 길을 걸어온 한 사람이 구지 선사를 찾아와 법문을 듣고자 했다. 그러나 마침 구지 선사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암자에는 어린 동자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 사람은 동자에게 말했다.  
"내가 수백 리를 걸어 법문을 들으러 왔는데 스님이 안 계시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에 동자가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우리 스님의 법문은 제가 대신 전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많이 듣고 익혀서 꽤 잘 알고 있거든요."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반가워하며 부탁했다.  
"그렇다면 네가 한번 전해다오."  
동자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적절한 뜻인가'라고 물어보세요."  
사람이 그대로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적절한 뜻인가?"  
그러자 동자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내밀었다.  
"우리 스님의 법문은 항상 이렇답니다."  
그 사람은 답을 듣고 크게 만족하며 떠났다.

나중에 구지 선사가 돌아오자 동자가 일어난 일을 보고했다.  
"스님께서 부재 중에 수백 리 밖에서 한 사람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스님이 안 계셔 걱정하기에 제가 대신 법문을 전했습니다."  
구지 선사가 물었다.  
"그래, 어떻게 전했느냐?"  
동자는 방긋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어떤 것이 불법의 적절한 뜻인가'를 묻기에 손가락을 내밀며 우리 스님의 법문 그대로를 전했습니다."  

이를 들은 구지 선사는 아무 말 없이 칼을 꺼내 몰래 갈아두었다. 그러고는 동자를 불러 말했다.  
"방금 했던 법문을 다시 한번 해 보아라."  
동자가 주저 없이 다시 재현하려 했다.  
"어떤 것이 불법의 적절한 뜻인가?"라는 질문에, 동자는 또다시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자 구지 선사는 동자의 손가락을 단숨에 거머쥐고 칼로 끊어버렸다.

깜짝 놀란 동자가 아파하며 울부짖으며 도망치다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선사의 부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놀란 마음으로 돌아본 동자에게 또 한 번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적절한 뜻인가?"   
본능적으로 그는 손가락을 내밀려 하였지만 이미 손가락은 없었다. 그 순간, 그는 갑작스럽게 진리를 깨달았다. 그의 스승은 손가락으로 진리를 깨달았고, 그는 손가락 없는 곳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 법문은 존재하는 것에 속하지도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 경계는 너무도 오묘하고 깊다. 구지 선사가 얻은 진리는 손가락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어짐에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스님들이 법문에는 해석이 따를 수밖에 없지만, 구지 선사의 이 한 손가락 법문에는 해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저 정주의 법연선사가 남긴 송(頌)이 전하여 오고 있다.

아름다운 미인은 자고 나서
머리도 빗지 않고, 금비녀로 단장도 하지 않고
분을 바르지 않아도 살결이 원래 곱고
자태가 너무나 요염하여 그대로 풍류일세
佳人睡起瀨梳頭
把得金釵揷便休
大抵還他肌骨好
不塗紅粉也風流

이 게송의 뜻은 무어냐 하면 구지선사의 손가락 드는 법문은 해석을 붙이지 않아도 눈 밝은 사람이 그대로 보면 그만 안다는 뜻이다.

하늘이 맑으니 해가 빛나고
비가 내리니 대지가 젖도다
생각을 다해 다 설파하였는데
다만 믿지 않을까 두렵도다
天晴日頭出
雨下地上濕
盡情都了說
只恐信不及

할 한 번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다른 화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