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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산에 갔다가 큰 곰을 만났다. 곰은 사람을 잡아먹으려 덤벼들었고, 너무 커다란 곰이 당장 공격해오니 그는 급히 큰 나무 뒤로 숨었다. 하지만 어리석은 곰은 사람을 잡으려고 나무 뒤로 돌아오는 대신, 나무를 껴안고서는 다리를 들며 사람을 끌어안으려 했다. 이때, 지혜로운 사람은 곰의 다리를 꽉 움켜쥐었다. 곰이 사람을 물려고 했지만, 나무가 가로막아 서 있어 물지도 못했고, 도망치려 해도 사람이 두 다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어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그는 먹은 것도 없고 곰에게 시달려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그 다리를 놓는다면 죽게 될 것이 뻔했기에 도저히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그 다리가 바로 그의 생명줄이었다. 한편 곰도 이 상황에서 점점 힘이 빠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한 나무꾼이 큰 도끼를 지게에 얹어 지나가다가 그들을 발견했다. 처음엔 깜짝 놀라 이것저것 살피며 달아나려 하자, 곰 다리를 붙잡고 있던 사람이 그를 불렀다.

"이보시오, 도와주시오. 저 도끼로 이 곰을 처리합시다. 이 곰은 가치가 높아 곰쓸개 같은 건 금보다 비싸다 하지 않소. 우리 함께 힘을 합쳐 곰을 잡읍시다."

나무꾼은 그 말에 솔깃해 도끼를 들고 다가왔다. 하지만 곰 다리를 붙잡고 있던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이봐요, 잠시만 이 다리를 잡고 있어 주시오. 나는 곰을 여러 번 잡아 본 경험이 있어 이 도끼로 결정적 장소를 정확히 내리쳐야 잡을 수 있소. 만약 잘못 치면 자네도 나도 큰일 날 거요."

경험 많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무꾼은 안심하며 슬그머니 곰의 다리를 잡았다. 그러자 곰을 붙잡고 있던 사람은 한숨을 내쉬며 긴장이 풀린 듯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는 묵은 담배 한 대를 태운 뒤 이렇게 말했다.

"사실 말하자면, 나는 곰을 잡아본 경험이 없다오. 괜히 잘못하다 우리 둘 다 위험해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크네. 그러니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오면 자네도 내 방법대로 전장(전가)시키게나." 하고는 도망쳤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홀로 있을 때는 자유로웠으나,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서부터는 마치 곰 다리를 붙잡게 된 상황과 같다고 여기곤 한다. 몸과 마음이 얽매이고 꼼짝없이 책임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이 곰의 다리, 즉 가정살림은 아들이 장성하고 며느리를 맞이하는 날 다 전가하고 떠날 날이 올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혼과 함께 세워지는 가정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없었던 것을 새롭게 이루어놓은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만큼 가정을 꾸리며 얽히고설킨 일들에도 마음의 여유와 신축성을 가지고 접근하라는 뜻이다. 모든 일을 천천히 보고 느긋하게 처리하며, 타인에게도 관대함과 포용력을 가지라는 메시지다. 물질과 사람에 초월한 정신으로 품위 있게 삶을 꾸려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의 태중에서 나올 때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영감도, 배우자도, 자식도 없이 빈손으로 나왔지만 점차 소유물과 애착이 생겨 그것들을 놓지 못해 밤낮으로 집착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 이런 망상들을 한 번 버리고 나면 일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근본적인 자신의 참된 모습(父母未生前 本來面目)으로 돌아가 올바른 생각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소중히 여기는 태도는 중요하나,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물질과 인간관계에 모든 이들이 매달리듯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초연하고 초월적인 정신으로 사물을 대할 때, 비로소 모든 일에 대해 달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야경》에서는 "반야 바라밀이 반야 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 바라밀이다" 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단지 이름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김 모씨, 박 모씨라는 이름과 성을 가지고는 있으나, 사실 본래부터 이름이나 성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태어나기 전 부모의 품 안에 있을 때에는 이름도 성도 없었습니다. 다만 편리하게 부르기 위해 붙인 대명사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진리나 법 역시 말로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부처님이나 선사께서 편의상 여러 방식으로 이름을 붙여 설명하셨던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반야 바라밀은 반야 바라밀이 아니며, 오늘의 설법 또한 단지 설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뿐인 것입니다.

할 한 번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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