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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좌에 올라 이르시되

나의 성품이 여래와 합하여 흘러가니
합한 곳에는 여래와 내가 둘이 아니로다
我性還共如來合
合處非他非自己

이 도리를 설령 알았더라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팔만대장경이 모두 말과 글로 이루어진 것은 부득이한 선택이지, 진리 자체를 완벽히 묘사한 것은 아니다.

이를 비유하자면, 사과 맛을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가? 사과 맛을 알고는 있으나 그것을 언어로 온전히 표현하긴 어렵다. 시고 달다고 말할 순 있지만, 그것만으로 사과의 맛을 전부 설명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리도 하루 종일 설명하거나 백 년 동안 논해도 말뿐이며, 글로 몇 권, 수백 권, 또는 수천 권을 써도 결국 글에 그칠 뿐이다. 글은 부처의 경지, 즉 진리의 자리를 온전히 구현할 수 없다.

설사 부처를 말하고 법을 설명하며 주장자나 불자를 들어 보이는 행위를 하더라도, 진리에서 백운만리처럼 멀어진 것이다. 문을 들어섰다 한들 ‘할’을 하거나 방망이를 치더라도 역시 진리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한다 해도 어쩔 수 없고, 또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것 또한 백운만리라 할 수 있다. 오늘 이 도리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말한다 한들, 여전히 진리는 멀다. 허허…

확연히 위음왕불의 소식을 꿰뚫어 본다면  
천지의 장구함에 바닷물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廓然透出威音外
地久天長海更深

중국 당나라 때, 항주 낙양사에 원택법사라는 고승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이원거사와 함께 아미산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형주 남포 땅에 이르러 갑자기 이원거사에게 말했다.

“원래 이곳으로 오지 않으려 했지만 자네가 오자고 권유하는 바람에 왔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기이한 인연을 만나게 되었네. 저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여자가 잉태한 지 벌써 열 달이 넘었는데, 내가 그 태 속으로 들어가야만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운명이더군. 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이 몸을 버릴 것이네. 자네는 나를 화장하고 정리한 뒤 떠나게나.”

뜻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된 이원거사는 당황스러웠다. 사람은 태중에 열 달을 채우고 태어나는데, 원택법사의 제팔식이 들어가야만 용케 태어날 수 있는 운명이라 했다. 원택법사는 덧붙였다.

“내가 떠난 후 화장을 끝내고 사흘이 지나 빨래하던 여자의 집으로 가 보게나. 내가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일 테니 아이를 보면 알아볼 수 있을 게야. 내가 안겨 있을 때 당신을 보고 웃는 모습에서 내 영혼이 자네를 알아보는 것으로 알게나. 그리고 12년 뒤 8월 13일, 천축사의 갈홍정반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세.”

그 말을 남기고 원택법사는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듯 조용히 숨을 거뒀다.

이원거사는 그의 말대로 장례를 치르고 사흘 후 해당 집을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막 아이가 태어났다고 했다. 아이를 안아보자 정말 방긋 웃었다. 이에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내가 왔네, 응, 내가 왔어”라고만 말했다.

12년 뒤 약속한 날, 그는 천축사의 갈홍정반으로 찾아갔다. 당시 천축사에는 상천축, 중천축, 하천축이라는 세 분류가 있었고 갈홍정반은 하천축사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소를 타고 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읊는 한 소년을 보게 되었다. 이는 12년 전에 다시 태어난 원택법사가 목동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노래는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삼생의 돌 위에 깃든 옛 영혼은  
달을 감상하고 바람 속에 읊조리며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三生石上舊精魂
賞月吟風莫要論

수줍도다 정든이여 먼 데서 왔구료
이 몸이 비록 다르지만 원택이의 성품인 줄 그대는 아는가
慙愧情人相遠方
此身雖異性常存

이 몸의 앞이나 뒤의 일이 바쁘고 바쁜데
지나간 인연들을 자네에게 말하고자 하니 창자를 끊노나
身前身後事忙忙
欲話因緣恐斷腸

오나라 월나라 강산은 두루 밟았고
이제 연운 어린 노를 돌려 전당호수로 저어갈까 하네
吳越江山尋已遍
却回烟棹上錢塘

우리는 이 몸으로 인해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진리의 경지에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끊어져 있으며 전생과 금생 또한 없는 것. 그렇지만 법(法)은 있는 가운데 없고, 없는 가운데 있는 것이다. 없는 가운데 있음으로 인해, 원택 법사 같은 이는 과거 전생에 한 여인과 모자의 인연을 맺었던 터라 훌륭한 법사가 되었지만, 그 인연을 어쩌지 못하여 결국 옛 몸을 버리고 그 여인의 태중에 들게 되었던 것이라네.  

이원거사는 모든 상황이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정신이 혼란스러웠고, 그저 원택 법사가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이었다. 이후 1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약속대로 천축사의 갈홍정반을 찾아갔으나, 소의 뿔을 두드리며 전당호를 지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 않은가?  
범부와 같은 중생이었다면 지나간 이야기도 하고, 현재의 일도 이야기하며 온갖 감회를 남겼겠지만, 도인의 경지는 세상의 정을 초월한 터라 달을 감상하고 바람에 읊조리는 것 안에 모든 말을 담아 끝을 맺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경지만 전할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네.  

그러나 이원거사는 아직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노래만 들었을 뿐, 그 말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훗날 사람들 또한 ‘상월음풍’이라는 말의 뜻을 음미할 줄 알아야 하겠지만, 수행 없이는 그 경지에 닿기란 쉽지가 않다네. 다만 이 의문에 대해 부지런히 수행한다면 언젠가는 이 ‘상월음풍’의 묘미를 깨달아 무릎을 치며 웃을 날이 올 터이니, 허허...  

복은 마음에서 구해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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