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요 발문
고령은 경전 보는 것을 묵은 종이나 뚫는 짓으로 여겼으며
윤편은 글 읽는 것을 술지게미를 맛보는 것으로 여겼으니,
진실로 도는 언어나 문자로써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에는 특별한 거처가 없고 그 바탕에는 모양이 없으니
만일 언어나 문자가 아니면 무엇으로 그것을 밝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 세존께서 비록 근기를 따라 교화하고 이끄심에
비밀스럽고도 중용되는 법을 자세히 이루어 놓았으나 12부의 법을 말씀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달마가 서쪽에서 오시어 비록 문자를 세우지 않았으나 법을 주고 받을 때에는 입으로 전하고 대면하여 일러주셨으니,
역시 말을 잊어서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도는 비록 언어와 문자에 있지 않으나 실제는 언어와 문자를 여의지 않았고
특히 정미로운 취지는 언어 밖에 갖추어져 있기에 쉽사리 엿볼 수 없다.
세상의 학자들은 흔히 말 자체에 집착하여 그 정미함을 체득하여 이해하지 못하며,
다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지 못하고는
결국에는 언어와 문자를 장애로 여겨
고령과 윤편으로 하여금 격분케 함으로써 묵은 종이니 술지게미니 하는 비방을 듣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언어와 문자는 바로 마음의 꽃을 피워 밝혀서 도의 오묘함을 그려내기 위한 것이니
애당초 어찌 도에 장애가 되겠는가.
고봉화상께서 설하신 법은 구름과도 같고 비와도 같음에
직옹 홍군이 그 가운데 기이하고 비밀스러운 것을 모아 <선요>라 이름하였고
이어서 영중 스님이 판각하여 그 유포를 넓히니,
이는 그물을 듦에 벼리를 얻음이요
갓옷을 듦에 옷깃을 건짐과 같다.
이로서 장차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법어의 요점에 의지하여 도체의 전모를 이해하게 하였으니
후학들을 깨우치고 인도하는 마음이 가히 돈독하다 할 것이다.
배우는 이들이 여기에서 참으로 넉넉히 노닐며 능히 그것을 구하여 흡족히 한 채 나아간다면
봄기운에 얼음이 녹듯이 기꺼운 마음에 이치가 순조로워질 것이니,
곧 공부의 차례와 전진해 나아가는 지조 및 방략을
노스님께서 이미 밥상채로 내놓아 남김없이 이 책속에 있건만
배우는 이들이 맹렬히 받아들이지 못할까 특히 염려될 뿐이다.
아! 편작의 처방 가운데 혹은 신단(神丹)이라 이름하고 혹은 무우산(無憂散)이라 이름하는 신령스런 약이 갖추어져 있어
죽은 이를 살리는데 그 효력이 찰나에 이뤄진다 하니,
안목을 갖춘 자가 정신을 차리고 마음의 힘을 다하여 부지런히 구하면 얻지 못할 것이 없으리다.
노스님의 말씀이 어찌 그대들을 속이겠는가?
배우는 이들은 행여라도 고령과 윤편의 말을 잘못 오인하여
노스님의 정성스러운 가르침을 잊어먹는 일이 없도록 하여
직옹과 영중이 공을 헛되이 베푼 것이 되지 않기를 바라나니,
또한 어록을 보아서 마음의 꽃을 피워 밝힌다면 오로지 앞 사람만을 장엄하는 것은 아니리다.
지원 갑오년 10월 16일, 참선학도 청소의 정명 주영원이 삼가 발문을 쓰다.
0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