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법문
어떤 승려가 물었다.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제 각기 무위법을 배우는데
이 자리가 부처뽑는 선불장이니,
마음이 공해지면 다시 돌아가네.’
방거사가 이렇게 말한 것에도 사람들을 위하는 자리가 있습니까?」
선사께서 답하였다.
「있느니라.」
다시 물었다.
「필경에는 어느 한 구절에 있습니까?」
선사께서 답하였다.
「첫 구절부터 차례차례 물어라.」
「어떤 것이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까?」
「용과 뱀이 뒤섞이고 범부와 성인이 사귀어 참구하느니라.」
「어떤 것이 저마다 함이없는 무위법을 배우는 것입니까?」
「입으로는 부처와 조사를 집어 삼키고 눈으로는 하늘과 땅을 뒤덮느니라.」
「어떤 것이 부처를 뽑는 선불장입니까?」
「동서가 십만리요 남북이 팔천리이다.」
「어떤 것이 마음이 공해져 급제하여 돌아가는 것입니까?」
「으시대며 옛 길로 올라서고 초조한 근기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말씀마다 진리를 드러나 있고 구절마다 종지가 모여 있군요.」
「너는 어디서 보았는가?」
「할!」
「그 또한 몽둥이를 휘둘러 달을 치는 것이로다.」
「이 일은 우선 그만 두고, 스님께서는 오늘 시방세계 대중들이 모여들어 선불장이 열렸으니 결국에는 어떠한 성서러움이 있겠습니까?」
「산하대지와 삼라만상과 유정무정이 남김없이 모두 성불하였느니라.」
「이미 모두 성불하였다면 무엇으로 인해 학인은 성불하지 못하였습니까?」
「네가 만약 성불한다면 어떻게 산하대지를 성불하게 하겠는가?」
「결국은 학인의 허물이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
「상주의 남쪽이요 담주의 북쪽이니라.」
「그래도 학인에게 참회를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절을 하여라.」
승려가 절을 하자마자 선사께서 말하기를
「돌을 던지면,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물지만, 한씨의 개는 돌덩이를 쫓아가는구나」 하였다.
선사께서 이에 불자를 세우고 대중을 불러 말씀하셨다.
“이것이 선불장이며 마음이 공하면 급제하여 돌아가리니,
영리한 자가 만약 이 속에서 알아차리면 곧 방거사가 얻은 깨달음의 자리를 보게 될 것이다.
방거사가 얻은 깨달음의 자리를 이미 보았다면
곧 역대 부처님과 조사들이 얻은 깨달음의 자리도 보게 될 것이며,
부처님과 조사들이 얻은 깨달음의 자리를 이미 보았다면
곧 자신이 얻은 깨달음의 자리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이 얻은 깨달음의 자리를 이미 보았다면
그 속에서 주장자를 꺾어버리고 바랑을 높이 걸어 두고
세 가닥 서까래 밑의 칠 척 되는 자리 앞에서
맛없는 밥을 씹고 물기 없는 국을 마시며 다리를 뻗고 잠을 자면서 유유자적하며 세월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종과 상전도 가리지 못하고 콩과 보리도 분간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구름을 헤치고 허공에다 한 줄의 ‘가갸거겨’를 써 놓고
여러 대중들로 하여금 그 모양대로 고양이를 그리게 하리라.
산승이 지난날 쌍경에 있다가 선방에 돌아간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홀연히 잠결에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에 의심이 들었다.
그로부터 의심이 활짝 일어나서
침식도 잊고 동서도 분별치 못하며 밤낮도 분간치 못한 채,
자리를 펴거나 발우를 펴거나 대변을 보거나 소변을 누거나, 움직이는 한 동작과 머무르는 한 동작 및 말 한 마디와 침묵의 한 순간에 이르기까지
온통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고 생각할 뿐
털끝만큼도 다른 생각이 없으며,
또한 털끝만큼의 다른 생각을 일으키려 해도 일으킬 수 없는 것은
마치 못을 박고 아교를 붙인 것처럼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비록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있더라도 마치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았으며,
아침부터 저물녘에 이르러 저물녘부터 아침에 이르기까지 맑고도 고요하며 우뚝하고도 드높아서
순수한 맑음에 티 한 점 없어 한 생각이 만 년이라 경계도 고요하고 나도 잊으니
마치 천치와 같고 흡사 바보와 같았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엿새째 되던 날,
대중을 따라 삼탑사에서 경전을 외다가 머리를 들어 문득 오조 법연화상의 영정을 보고서
별안간 일전에 앙산 노화상께서 물으시던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라는 화두를 확연히 깨치게 되니,
곧장 허공이 가루처럼 잘게 부숴지고 대지가 평탄하게 가라앉아
사물과 나를 몽땅 잊어버림이 마치 거울에 거울을 비추는 것과 같았다.
백장의 들여우와 구자무불성과 청주의 베옷과 여자출정 등의 화두를
차례차례 빠짐없이 챙겨서 증험해 보니 속속들이 모르는 것이 없었더라.
반야의 오묘한 작용이 진실로 거짓되지 않았다.
전에 들었던 무(無) 자 화두는 거의 3년이 되도록 죽 먹고 밥 먹는 두 때를 제하고는
일찌기 방석에도 앉지 않았고 비곤할 때도 자리에 의지하여 기대지 않으며
비록 밤낮으로 이리저리 다녔으나
항상 혼침과 산란의 두 마구니와 더불어 뒤섞여 한덩어리가 되었음에
갖은 재주를 다 부려도 물리쳐 떨치지 못하였다.
그 무(無_ 자 위에서는 마침내 밥 한 술 뜰 순간이라도 힘을 얻어 화두와 한덩어리를 이룬 적이 없었는데,
스스로 깨친 후에 그 병의 근원을 살펴보니 별다른 까닭은 없고
다만 의심하는 그 위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한결같이 단지 화두를 들더라도 들 때에는 있다가 들지 않으면 곧 없었으며,
설령 의심을 일으키려 하여도 또한 손을 쓸 자리가 없었으며,
설사 손을 써서 의심이 이루어지더라도 다만 잠깐 사이일 뿐 다시 혼침과 산란으로 두 토막이 남을 면치 못하였다.
그리하여 공연히 허다한 세월만 낭비하고 공연히 허다한 고생만 하였으나 조금도 진취가 없었다.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하는 화두는
무無 자 화두와 달라서 우선 의심이 쉽게 생겨 한 번 들면 곧 들려지고
반복하여 사유하거나 헤아리며
마음 먹지 않더라도 의심을 일으키기만 하면 차츰차츰 한덩어리를 이루어 곧 화두를 든다는 마음까지 없어졌다.
이미 화두를 든다는 마음이 없어졌으므로 화두도 곧 없어져
드디어 만 가지 반연은 쉬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쉬어지고
육근은 고요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고요해져서 가는 티끌만큼도 범하지 아니한 채
단박에 무심삼매(無心三昧)에 들어갔었다.
홀연히 죽 먹고 밥 먹는 자리에서 바루의 저쪽을 향해 수저를 더듬고 있을 때에도
옹기 속에서 달리는 자라는 결정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미 증험한 방법이니 속이는 것은 분명 아니니,
만약 한 마디라도 여러분들을 속여서 미혹하게 한다면 영원히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떨어짐을 자초하는 것이 되리다.
지금에 반야를 배우는 보살들이
필연코 이 일대사를 밝히고자 산이 높고 물이 깊음을 꺼리지 않고 일부러 나를 보러 왔거늘,
하물며 게다가 제각기 손가락을 태우고 향을 태워 계행을 수립하고 원력을 세우며
이를 갈아붙이고 철석 같은 의지를 준비하였음에랴.
이미 이와 같은 지조와 방략과 이와 같은 지견이 있다면
모름지기 자기의 처음 마음을 저버리지 말며,
부모가 그대를 버려서 출가하게 한 마음을 저버리지 말며,
새로 승당을 건립해 준 단월의 신심을 저버리지 말며,
국왕과 대신들이 외호하는 마음을 저버리지 말라.
당장에 큰 믿음을 갖추어 가며, 당장에 변하거나 달라짐이 없게 하며,
당장에 만 길의 벼랑 위에 선 듯이 하며,
당장에 밑그림을 따라 고양이를 그려 갈지니라.
그리고 또 그리다가 두 귀가 솟고 무늬가 얼룩진 자리와
심식의 길이 끊어진 자리와 사람도 법도 모두 잊은 자리에
그림이 도달하면 붓 끝에서 별안간 산 고양이가 튀어나올 것이니,
와! 원래 온 대지가 선불장이며 온 대지가 자기일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방거사를 말해 무엇하겠는가.
설령 삼승십지(三乘十地)의 성인이라도 간담이 서늘하고 혼이 나갈 것이며,
부처나 조사라도 몸을 용납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더라도
만약 인간과 하늘무리의 안목을 열어 부처와 조사의 종지를 드날리고자 한다면
다시 자기와 선불장을 가져다 녹여 한 덩어리로 만들어 백천만억 세계 밖에 날려버리고
몸을 굴리고 걸음을 옮겨
위음왕 저쪽의 다시 저쪽으로 한 바퀴 돌더라도 다시 돌아와
나에게 모진 방망이를 맞아야 할 것이다.
대중들이여, 이미 자기까지 날려버렸는데 또 무엇을 가지고 몽둥이를 맞겠는가?
홀연히 생명을 돌보지 않는 자가 있어서
이렇게 한 말을 듣고 뛰어나와 선상을 치켜들어 쓰러뜨리고
고함을 쳐 대중들을 흩어버리더라도
옳기는 참으로 옳으나 요컨대 서봉 사자암은 기꺼이 긍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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