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 참선하는 스님들께 일상에서 하신 말씀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들이 남기신 것은
한 마디 말씀이나 반 토막 글귀라도
오직 중생들이 삼계를 초월하고 생사의 흐름을 끊도록 힘쓰신 것이니,
그러므로 「일대사의 인연을 위해 세상에 출현하였다」고 하셨다.
만약 이 일대사를 논하자면
마치 달리는 말 앞에서 씨름하려는 것과 같거나
번갯불빛 아래서 바늘귀 꿰려는 것과 같으므로
그대들이 사량하여 이해할 수 있는 자리도 없으며
그대들이 계교하여 분별할 자리도 없으니,
그러므로 「이 법은 사량하고 분별하는 것으로 능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세존께서 영산회상에서 맨 마지막에 이르러
3백60의 뼈마디와 8만4천의 털구멍까지 남김없이 드러내 보이시니
비록 백만의 대중이 에워싸고 있었건만 알아듣는 이는 오직 가섭 한 사람 뿐이었으니,
이 일은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님을 믿어 알지니라.
만약 확실하고 분명하게 증득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우뚝 서고 활달한 생각을 열고 장부의 의지를 드러내어
종전의 나쁜 지식과 나쁜 견해와 기이한 말과 교묘한 문구와 참선의 도(道)와 부처님의 법과
평생토록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들은 것들을 가져다가,
위태롭고 죽고 얻고 잃음과
너니 나니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과
도달함과 도달치 못함과 철저함과 철저하지 못함 등을 돌아보지 말라.
큰 분노를 드러내어 금강의 날카로운 칼날을 휘둘러
마치 한 줌의 실을 벰에 하나가 베어지면 일체가 끊어지고
한 번 끊어진 후에는 다시 이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하면,
곧장 가슴 속이 텅 빈 듯이 확 트이고 광활하여 실끝만치도 막히거나 걸림이 없으며
다시 어느 한 법도 정에 맛닥뜨릴 것이 없는 것이 어린아이와 다름이 없다.
그러면 차를 마셔도 차 마시는 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 먹는 줄 모르고,
다녀도 다니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있는 줄 알지 못하여 정식이 단박에 맑아지고
계교가 모두 없어짐이 흡사 숨결만 남은 시체와 같으며
또는 진흙으로 빗거나 나무로 조각한 것과 같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갑자기 손발이 삐끗하여 마음의 꽃이 몰록 피어남에
훤하게 시방세계를 비추는 것이 마치 밝은 해가 하늘에서 빛나는 것과 같으며
또한 밝은 거울이 경대 위에 놓인 것과 같아서
한 생각도 지나치지 않고 몰록 정각正覺을 이루게 되리니,
오직 이 일대사만을 밝힐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 혹은 부처님 혹은 조사들의 온갖 차별된 인연을 몽땅 철두철미하게 꿰뚫어 알며
불법과 세간법을 두드려 한 덩이로 만들어,
자유롭게 운에 맡기고 운에 맡겨서 자유로우니
흐르는 구름처럼 티없는 창공처럼 일도 없고 틀도 벗은 참된 도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한 차례 세상을 뛰어나와야 비로소 평생 참선학도의 의지와 서원을 저버리지 않았다 할 것이다.
만약 이 생각이 가볍고 미약하며 의지가 맹렬하고 예리하지 못하여
어슬렁어슬렁 강팡질팡 오늘도 그럭저럭 내일도 그럭저럭 지낸다면
설령 스무 해나 서른 해를 공부하더라도
마치 물에 잠긴 돌과 같아서
어느덧 섯달 그믐날에 이르면
열 가운데 다섯 쌍이 허탕을 치고
만학도나 초학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이니,
이따위 놈들은 고봉의 문하에 오면
천 명이건 만 명이건 때려죽인들 무슨 죄가 되겠는가.
오늘 우리 대중들은 모두가 뛰어난 매요 날쌘 솔개이며 용 같고 범 같지 않은 이가 없어서
하나를 들어 말하면 셋을 밝혀내고 눈저울로 푼과 냥을 가리거늘
어찌 기꺼이 그 따위로 처신하여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겠는가?
그러나 비록 이와 같더라도
바로 이렇게 되었을 때 필경 무엇을 일대사라 말하겠는가?
설령 말하더라도 너희에게 서른 대를 때릴 것이요,
말하지 못하더라도 너희에게 서른 대를 때릴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우리 문하에는 상과 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임시 여기에 온 지 24년 동안 항상 병중에 있으며
의원을 찾고 약을 먹는 등 온갖 고생을 다 겪었으나
병이 깊이 들어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음을 어찌 알았겠는가.
후에 쌍경에 이르러 꿈속에서 단교화상께서 주신 단약을 복용하고
엿새 째 되던 날 뜻밖에도 앙산 노화상께 맞았던 독을 터뜨리니
당장에 혼비백산하여 혼절한 뒤 다시 깨어났었는데,
그 때 문득 온 몸이 가뿐하다 느낀 것이 마치 1백20근의 짐을 내려놓은 것만 같았다.
이제 이 단약을 가지고 대중에게 보시하나니,
그대들이 이것을 먹으려면
먼저 육정과 육식 및 사대와 오온 그리고 산하대지와 삼라만상을 가져다 모두 녹여
하나의 의심덩어리를 만들어 몰록 눈앞에 놓아두라,
그러면 창 하나 깃발 하나 쓰지 않고도 쥐 죽은 듯 고요한 것이 마치 청평세계와 같아질 것이다.
이와 같으면 다닐 때에도 다만 의심뿐이요,
앉았을 때에도 다만 의심뿐이요,
옷 입고 밥 먹을 때도 다만 의심뿐이요,
변 보고 오줌 눌 때도 다만 의심뿐이며,
나아가서는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 모두가 다만 의심뿐일 것이다.
의심하고 의심하다 의심함이 힘을 더는 자리에 이르면 그곳이 곧 힘 얻는 자리이니,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도 의심이 나고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져서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머리와 꼬리가 이어져서
한 덩어리를 이루어 실 한올 꿰맨 틈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고 쫓아도 가지 않으며
밝디 밝고도 신령하여 항상 앞에 드러나 있음이 마치 물살을 따라 배를 띄우는 것 같아서
전혀 힘들이지 않게 될 것이니, 바로 이것이 곧 힘을 얻는 시절이니라.
다시 모름지기 바른 생각을 정성스럽게 하고
삼가 두 마음이 없게 하여 더욱더 광채를 연마하고
더욱더 습기를 도태시켜 그윽하고도 오묘함을 다하고 지극히 미묘함에 이르러
한 터럭 위에 몸을 편히 놓아두고,
외롭고도 아득하며 우뚝하고도 드높게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으며
오는 일도 없고 가는 일도 없이 한 생각도 나지 않은 채
앞뒤의 시간이 끊어지면,
이로부터 번뇌와 망상은 몰록 쉬어지고
혼침과 산란은 사라져서 다닐 때도 다니는 줄 알지 못하고 앉아 있을 때도 앉아 있는 줄 알지 못하고
추울 때도 추운 줄 알지 못하고 더울 때도 더운 줄 알지 못하고
차 마실 때도 차인 줄 알지 못하고 밥 먹을 때도 밥인 줄 알지 못하여
종일토록 멍청이가 멍한 것이 흡사 진흙으로 빗거나 나무로 조각한 것과 같게 될 것이니,
그러므로 담벼락과 다름이 없다 일컬은 것이다.
이러한 경계가 눈 앞에 드러나기만 하면 곧 집에 도착하는 소식이라
결코 거리가 멀지 않으니 잘 붙들고 꼭 잡아서
단지 그러한 시각만을 기다리라. 또한 도리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한 생각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켜
그것을 구하지도 말며, 또한 도리어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기다리지도 말며,
또한 도리어 한 생각을 놓아버리고자 하지도 말며,
또한 도리어 한 생각을 버리고자 하지도 말지니,
곧장 바른 생각을 굳혀서 깨우치는 것으로 법칙을 삼아야 한다.
이러한 시기에 당도하면 8만4천의 마구니가
그대의 육근 문턱에서 모든 온갖 기이하고 수승하며
선하고 악한 영험이 있는 일들을 엿보다가
너의 마음에 따라 베풀어 주고, 너의 마음에 따라 생겨나게 하며,
너의 마음에 따라 구해 주고, 너의 마음에 따라 드러나게 해 주니,
무릇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이루지 못하는 바가 없게 된다.
네가 만약 털끝만한 차별된 마음을 깜빡 일으키거나 티끌만한 망령된 생각을 내고자 하면
곧 저들의 함정에 떨어지고 곧 저들의 종이 될 것이고
곧 저들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입으로는 마구니의 말을 하고 마음은 마구니의 행동을 행하되
도리어 다른이의 잘못만 비방하고 스스로가 참된 도라 칭찬할 것이니,
반야의 올바른 씨앗은 이로부터 영원히 없어지며
보리의 종자는 다시 싹이 나지 않음에
세세생생에 마구니만이 항상 길동무가 될 것이다.
응당 알아야 할지니,
이러한 뭇 마구니의 경계는 모두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며
자기의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기에
마음이 만약 일어나지 않으면 그들이 어찌 하겠는가?
천태가 이르기를
「너의 기량은 다함이 있지만 내가 간여하지 않기로는 다함이 없다」 하였으니
진실되도다 이 말씀이여!
단지 일체 자리에서 놓아버려 얼음같이 차갑게 하고
들녘처럼 평탄케 하며
순수하게 맑아서 티가 끊어진 듯 하고 한 생각으로 만 년을 가듯 하되,
마치 시체를 지키는 귀신과 같이 지키고 또 지키다
의심 덩어리가 번쩍하며 폭발하듯 한 차례 소리를 내면
필시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일 것이니,
힘쓰고 힘쓸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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