示直翁居士 洪新恩
「종일토록 둘 아닌 도리를 함께 이야기했지만 일찌기 한 글자도 거론한 적이 없다」 하였으니, 이 뜻이 무엇인가 다시 묻는다면 서로 번갈아 아둔하게 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부모는 나의 친한 이가 아니니 누가 가장 친한 자인가? 눈먼 거북과 절름발이 자라이니라」 하였으니, 영리한 자가 이 속에서 알아 듣는다면 끝없는 국토경계의 나와 남이 털끝만큼도 떨어져 있지 않으며 십세(十世)의 예전과 지금 및 처음과 끝이 현재의 한 생각을 여의지 않았음을 보겠거니와, 혹시 그렇지 못하다면 심식(心識)을 흔들어 굴려서 눈먼 거북과 절름발이 자라 위로 나아가 정신을 차려 의심하는 마음을 일으켜 보는 것도 무방하리다. 의심하고 의심하여 곧장 안팎을 두드려서 한 덩어리로 만들고 종일토록 털끝만큼도 새어나옴이 없게 하고는 가슴에 가시가 걸린 듯한 답답함이 마치 독약에 중독 된 것처럼, 또한 금강석과 밤송이 덩어리를 기어코 삼켜서 기필코 소화시키려는 것처럼, 다만 평생의 기량을 다하여 해나가면 자연히 깨닫는 자리가 있게 될 것이다.
설령 금생에 삼켜서 소화시키지 못하고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 모든 악도에 떨어지더라도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구속됨도 없고 속박됨도 없으면 설사 염라대왕와 제대귀왕들을 만나더라도 오히려 공경할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아마도 반야의 불가사의한 위력이 있기 때문이리다. 그러한 즉 현행의 여러 업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반야의 힘이 뛰어난 것이 마치 금강으로 된 깃대는 뚫어도 뚫리지 않고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세간에서 사람이 부유하고 세력있는 문중에 태어난 것도 역시 이와 같아서 일체의 벼슬아치와 아전이나 졸개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 또한 물건을 던져 땅에 떨어뜨리면 무거운 쪽이 먼저 닿는 것과 같나니, 보기에는 비록 이루어지고 머물고 무너지고 없어지는 등의 모습이 있지만 마치 용이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과 같으며 나그네가 잠시 여관에 머무는 것과 같아서 그 실다운 본래의 주인은 생멸도 없고 오감도 없으며 증감도 없고 노소도 없어서 비롯함도 없는 옛적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머리를 내밀었다 드밀었다 하며 천번 만번 변화하여도 일찌기 털끝만큼도 옮기거나 바뀌지 않았다. 슬픈 일이로다! 한 부류의 학인들이 흔히 이 식심識心을 대체로 오인하여 바른 깨달음을 구하지도 않고 생사에서 벗어나지도 않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도다.
금생에 이미 이 반야종자의 싹을 틔웠으면 태어나자마자 필시 복락과 지혜를 모두 온전히 갖추어 고금에 뛰어나리니, 배상국과 이부마와 한문공과 백락천과 소동파와 장무진 등이 이러한 부류이다. 비록 미혹한 욕락의 경계에 빠졌으며 또한 일찌기 공부도 하지 않았지만 선지식을 찾아 뵙자마자 한 마디 말 끝에 최상의 도를 몰록 깨닫고 생사를 초월하였으니, 비록 티끌 가운데 있더라도 삼매에 노닐며 부처님의 부촉을 잊지 않고 우리 불문을 외호하여 모두《전등록》에 기록되어 부처님의 혜명을 이었다. 이러한 무리들이 만약 전생에 반야종자를 심어 가꾸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복락과 지혜를 만족하게 얻을 수 있었겠는가! 그렇긴 그렇지만, 오늘 산승에게 도리어 범부를 단련하여 성인을 이루는 약이 있으니 심어서 가꿔야 하는 종자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면 얘기가 번거로우므로 간략하게 한 수의 게송으로 들어본다.
심은종자 묵은원인 밝혀내고 싶다면야,
上大人에 丘乙己를 익숙토록 읽을지라.
읽다읽다 禮아는곳 그대만약 도달하면,
눈먼거북 외발자라 누구보다 친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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