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그렇지 스님의 그렇지 수행
수행은 모든 곳과 모든 때에 밝고 신령하게 작용하는 모든 행위가 수행이 아닌 것이 없다. 우리나라 선방에서 공부하는 수좌 스님들이 한 번 결사를 해서라도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곳 중 하나인 각화사(覺華寺) 동암(東庵)은 경상북도 봉화군 태백산 각화사 산내 암자인 동암이다.
동암은 십팔조사(十八祖師)가 나올 대명당이라 많은 수좌들이 좌선을 하고 있으나, 항상 식량이 넉넉하지 못하여 그 중 한 스님은 항상 걸망을 지고 마을로 다니며 식량을 탁발하러 다녔다.
그 스님은 일평생 동안 말이라곤 한마디뿐이었다. 그 말씀은 탁발하러 남의 집 문전에 가서 서 있기만 하면 아이나 어른이나
"동냥 줄까요?"
하고 물으면
"그렇지"라고 대답하는 것뿐이었다.
언제나 먼저 하는 말은 없었고, 높고 낮음과 나이를 막론하고 물으면
"그렇지"라고 할 따름이었다.
"쌀을 드릴까요?"
해도
"그렇지",
"보리쌀을 드릴까요?"
해도
"그렇지",
"소금을 드릴까요?"
해도
"그렇지"라며 일평생 주는 대로
"그렇지"
하고는 가져갔다.
하루는 짓궂은 농부가 물이 가득 찬 물논에서 벼를 베다가
"이 벼 한 단 져다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 달라"고 농담으로 말하니
"그렇지"
하였다.
이에 볏단을 일부러 크게 묶어 물논에 둥글둥글 굴려 물을 흠뻑 적셔서 논둑에 내어 주니
"그렇지"
하고는 태백산 동암까지 하루 종일 지고 올라갔다.
그래서 천진불이라 불렸다. 그렇게 천진불이라 불리던 그 스님도 탁발을 마치고 절로 돌아왔을 때, 대중 스님들이 말없이 조용히 공부하고 있으면 무거운 걸망을 후원에 조용히 내려놓고, 공부하는 방 앞에 와서 합장하며 배례하였다. 만약 이야기 소리가 문 밖에 들리면 걸망을 큰방 정면 앞에 힘껏 던지면서 한숨을 산이 무너질 정도로 크게 쉬곤 하였다고 한다.
공부하는 스님들의 식량을 일생 동안 탁발하다가 하루는 대중 스님들을 모두 모아 놓고 평생 처음으로 입을 열어
"이 어리석은 산승을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에서 부르니 하는 수 없이 초청을 받아 대중 시봉을 못하고 가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열반에 들어 다비를 모셨더니 사리가 무수히 나왔다고 한다.
'그렇지' 스님께서는 일생 동안 '그렇지'라는 말로 보내며 평생 좌복에는 한 번도 앉을 여유가 없었다. 우리 불교 사부대중도 이런 훌륭한 도인 스님의 행적을 거울삼아 우리 수행인에게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이 이야기를 소개한다.
옛 스님들께서는 말없이 행동으로 근본 수행과 덕을 쌓아 수행 완성을 이루셨는데, 일반 우리 소인배들은 행은 외면하고 말이 앞서니 어느 누구도 믿지 않게 된다. 말 이전에 실천 행동을 하기로 다 같이 노력해 봅시다.
(불문보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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