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홍수에 떠내려가는 개미 떼를 구해 방생하니 수명이 길어졌다.
구한말에 유명한 대강백이 계셨으니, 그 스님의 법명은 해주(海珠)이며 법호는 용호(龍湖)이다.
청화산(靑華山) 백련사(白蓮寺, 혹은 白蓮庵)의 대강백이셨다.
취인(取仁) 스님의 강맥을 이었으며, 군위, 의성, 선산(지금의 구미시) 삼개 시군에 이어져 있는 청화산 백련사에 출가하셨다고 한다.
스님은 대강백이면서도 열심히 수행하시어 혜안도 매우 밝으셨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용호강백(龍湖講伯)의 세속 지인 중에 인동장씨(仁同張氏) 성을 가진 장 선비가 있었고, 그 선비의 벗 가운데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 관상가는 장 선비의 어린 아들을 보고 단명하여 13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 하여, 절로 출가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였다.
이에 백련사 용호강백에게 부탁하여, 용호강백의 상좌로 출가시켜 법명을 도암(道菴)이라 하였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도암행자의 나이가 열세 살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용호강백께서 상좌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니, 도암의 수명이 칠일 밖에 남지 않아 칠일 안에 죽을 것 같았다.
용호스님은 지인의 어린 아들이 절에서 죽으면 지인 내외가 매우 섭섭해할 것 같아, 며칠 동안이라도 부모 곁에서 지내게 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상좌에게 말씀하셨다.
"집에 가서 여름날 입을 삼베옷 한 벌과 찬바람이 불 때 입을 무명옷도 만들고, 신을 버선도 지어 한 일주일만 부모 곁에 있다가 오너라."
하고 집으로 보내었다.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집에서 부모 곁에 함께 있다가 부모 앞에서 죽으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칠일이 지난 뒤 상좌는 건강한 모습으로 옷도 짓고 버선도 만들어, 스님께 드리라고 떡까지 해 가지고 아무 일 없이 돌아왔다.
살아서 돌아온 상좌의 얼굴을 자세히 본 스님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원래 단명할 상에다 상이 매우 나빠서 꼭 죽을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나쁜 기운은 완전히 사라졌을 뿐 아니라 앞으로 장수할 상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반드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용호강백은 상좌에게 그간 열흘 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물었다.
상좌는 대답하였다.
"아무 일도 없었고, 집으로 가는 길에 청산골 작은 개울을 건너는데, 그때 개미떼 수만 마리가 새까맣게 나무 가지에 붙어 흙탕물에 떠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작은 폭포가 있고, 그 아래로는 물이 용솟음치고 있어서 모두가 빠져 죽을 상황이었습니다.
순간 스님께서 '죽을 목숨을 살려 주어야 불자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고 복을 받는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 얼른 옷을 벗어 나무 가지와 개미들을 다 받아 높은 언덕에 놓아 주었습니다.
그뿐입니다."
스님은 그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치셨다.
그리고 상좌의 등을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렇지! 개미떼를 살려준 방생의 공덕으로 장수하게 되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공부하게 되었구나. 이것이 모두 불보살님의 가피력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나무 석가모니불."
칠일 안에 죽을 상좌의 생명은 개미들을 살려준 공덕으로 수명이 칠십 년 연장되어, 팔십삼세에 용호강백의 강맥을 이어받은 것을 성암당(性庵堂) 성찬강백(性讚講伯)에게 전하였고, 1950년 11월 18일 백마산(白馬山) 정수암(淨水庵)에서 입적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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