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왕랑의 반혼전
옛날 함경남도 길주에 왕사궤(王四机)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가 잠을 자고 있는데, 창문 밖에서 "여보! 여보!" 하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려는 순간, 11년 전에 죽은 아내 송씨 부인이 와서 창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보, 어서 일어나셔서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갑자기 놀라 일어난 왕사궤는 창문을 열고 물었다.
"죽은 당신이 어찌 나를 찾아왔단 말이오?"
"꼭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 뵙고자 왔습니다."
"무슨 부탁이오?"
"다름이 아니라, 저는 죽은 지 11년이나 되었지만 명부에서 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아 오도 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침 당신의 명이 내일로 다하기 때문에, 내일 아침이면 다섯 사자가 당신을 잡으러 올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전에 당신과 제가 서쪽을 향해 염불하며 절을 하는 이웃집 안씨 할머니를 비방하며 시끄럽다고 욕설을 퍼붓지 않았습니까? 죄 가운데 남이 염불하고 기도하는 것을 비방하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없기 때문에, 당신이 오기만 하면 저와 함께 지옥으로 간다고 합니다.
부디 지금부터 목욕재계하고 집안을 청소한 다음, 서쪽 벽에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를 써 붙이고 정성을 다해 염불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이 죄를 면치 못하오니, 부디 이 부탁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왕랑은 너무도 역력하고 분명한 일이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목욕재계한 다음, 죽은 아내가 부탁한 대로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다.
이튿날 아침, 날이 훤히 밝으려 할 때 과연 다섯 명의 저승사자가 오더니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말 듣기와는 다르군."
그들은 도리어 왕랑에게 절을 하였다.
"어디서 오신 분이십니까?"
"예, 저희는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고 당신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도량을 정돈하고 염불을 하고 계시니 함부로 다룰 수 없습니다.
대왕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길을 떠나시지요."
할 수 없이 그들을 따라 명부에 이르렀는데, 염라대왕이 사자를 보고 꾸짖고 계셨다.
"이놈들, 꽁꽁 묶어 빨리 오라 했는데 왜 이렇게 늦었는가?"
"황공하오나 도량을 청결히 하고 앉아 염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명령대로 실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염라대왕의 태도가 급변하였고, 10대왕 모두가 일어나 목례를 하였다.
"그대 부부가 일찍이 안씨 노인이 염불하는 것을 비방하고 욕설하였기에 먼저 송씨를 잡아온 다음, 그대의 수명이 다하기를 기다려 함께 지옥에 보내고자 하였도다.
이제 사자의 말을 들으니 지성으로 염불한다 하니, 모든 죄를 용서하고 다시 인간으로 보내어 30년을 더 살게 하리라."
그때 죄판관이 말했습니다.
"왕랑은 시신이 있으므로 지금 돌아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지만, 송씨는 죽은 지 오래되어 시체가 썩어 버렸으니 어찌합니까?"
이에 염라대왕이 매우 난색을 표하자 왕랑이 말했습니다.
"길주 군수의 딸이 지금 21세인데, 명이 다하여 이틀 전에 죽은 것을 보고 왔습니다.
아직 그 시신이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 송씨의 혼령을 그에게 의탁하면 어떻겠습니까?"
"참 좋은 의견이다."
염라대왕은 그들을 인간 세상으로 다시 내보내면서 당부했다.
"옆집에 사는 노인은 3년 후에 돌아가셔서 바로 극락세계로 가실 것이니, 부모님처럼 잘 모시고 사시오."
왕랑은 죽은 지 3일 만에 깨어났고, 길주 군수의 딸도 살아나 그동안 명부에서 있었던 일을 군수에게 보고하였다.
"이 몸은 군수님의 소생이 분명하오나, 영혼은 왕랑의 전처 송씨의 영혼이오니, 그리로 시집을 보내 주십시오."
"영혼은 누구든지 상관없으니, 몸은 우리 부부가 낳아 준 것이니 우리만 잘 모시면 충분하니라. 시집은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거라."
길주 군수 부부는 크게 기뻐하며 혼례식을 올려 주었다.
왕랑 부부는 30년을 더 살아, 왕랑의 나이 80세, 부인의 나이 51세가 될 때까지 아들딸을 낳고 잘 살다가 한날 한 시에 함께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또 그 옆집에 사는 안씨 노인도 왕랑이 되살아난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 세상에 이런 기적이 없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심을 내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로, 조선시대에 『왕랑 반혼전(王郞返魂傳)』이라는 책으로 간행되었으나 지금은 구할 수 없고 다만 이야기만 전해질 뿐이다.
우리도 지성을 다해 염불하면 업장이 소멸되고 사후에는 왕생극락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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