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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아귀의 몸을 받은 상좌

 


옛날, 한 스님이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산속 깊은 암자에서 어린 상좌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은사 스님은 마음씨가 후덕하고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어린 상좌가 살갑고 귀여워서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상좌가 "스님, 이렇게 할까요?" 물으면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오냐, 네 마음대로 하여라."
상좌가 "스님, 저렇게 할까요?"라고 물으면
스님께서는 "오냐, 네 마음대로 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짓을 하든 야단은커녕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하시니 상좌의 버릇이 점점 더 나빠졌다.
부처님께 올릴 공양을 준비하다가도 맛있고 좋아 보이는 것이 있으면 훌쩍 집어먹기 일쑤였다.
어느 날 상좌는 부처님께 올릴 두부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두부를 두툼하게 썰어 지지다가 어찌나 맛있어 보이는지 한 쪽을 입에 넣었다.
그때 스님이 불쑥 후원(부엌)으로 들어왔다.
상좌는 입에 든 두부를 씹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해 꿀꺽 삼켜버렸다.
그런데 갓 지진 두부를 통째로 삼켜버렸으니 속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좌는 그만 병이 들어 얼마 동안 앓다가 죽고 말았다.
스님은 "내가 박복해서 상좌가 먼저 죽었구나." 하고 탄식하며 상좌를 혼자 장사지내고, 바랑을 짊어지고 그 암자를 떠났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이 절 저 절을 떠돌다가 그 암자 앞을 다시 지나가게 되었다.
옛날 생각이 나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절 마당에는 쑥대만 가득하고 암자는 거의 다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스님은 상좌의 모습이 선하여 눈을 지그시 감고 상좌의 이름을 한 번 불러보았다.
"어험, 아무개 있느냐?"
하시니 죽은 상좌가 "예, 스님 이제 오십니까?" 하고 대답했다.
머리끝이 쭈삣해진 스님이 눈을 뜨고 보니, 틀림없는 상좌가 가사 자락을 붙들고 서 있는 것이었다.
"아이고 스님, 어디 갔다 이제 오십니까? 제가 스님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아십니까? 어서 방으로 드십시요. 얼른 점심 공양상을 올리겠습니다."
상좌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간 스님은 잠시 후, 방안을 둘러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10년 동안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후원으로 나가 안을 훔쳐보았다.
상좌는 키득키득 웃으며 후원 안을 왔다 갔다 하더니 녹이 벌겋게 쓴 솥뚜껑을 열어 입을 딱 벌리고 "으악, 으악" 하며 소리를 쳤다.
그러자 상좌의 입안에서 그동안 훔쳐먹었던 것들이 와락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이 솥에 가득 차자 뚜껑을 덮고는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아 입김을 확 불자, 붉은 불길이 일어나 금방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매우 놀란 스님은 숨을 죽이고 더욱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는 상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 한 그릇 먹으면 제놈이 안 죽고 버틸까?"
"아하, 내가 아귀 귀신에게 끌려 들어왔구나."

스님은 바랑을 챙길 여유도 없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냅다 뛰었다.
후원에서 나온 상좌는 스님이 없어진 것을 알고 뒤를 쫓았다.
스님이 얼마쯤 달아나다 뒤를 돌아보니 머리가 시뻘건 아귀 귀신이 뒷덜미를 잡을락 말락 쫓아오고 있었다.
간신히 산문 밖으로 나오니 아귀 귀신은 자기가 사는 영역 밖이라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하고 산문 안에 주저앉아 통곡하며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스님, 스님, 저는 여기서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습니다.
나갔다가는 다른 아귀들에게 맞아 죽습니다.
제발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스님께서 "말해 보아라." 하시니 상좌가 말했다.
"제가 이렇게 아귀 귀신이 된 것은 다 스님 때문입니다.
애초에 스님께서는 저를 야단쳐서 가르치시지 않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이든 제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죄를 많이 지어 이렇게 아귀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도량에 가시거든 저를 위해 천도재를 올려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오냐, 알았다.
내가 잘못해서 네가 그렇게 되었으니 네 소원대로 해주겠다.
그러니 너는 지장보살님을 지성껏 염하고 있거라."

스님은 약속대로 탁발을 하여 선방 스님들이 공부하고 계시는 선방이 있는 절로 가서 수좌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상좌를 위해 천도재를 정성껏 올려 천도를 해 주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어릴 적 상주 남장사에서 스님께서 꾸중하신 뒤, 산승이 울고 있으니 중노릇을 잘하라고 꾸중하셨다는 은사 스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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