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묘정사미(妙正沙彌)와 여의주(如意珠)
신라 원성왕(元聖王)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원성왕이 황룡사(黃龍寺)의 지해 화상(智海 和尙)을 청하여 궁중 내전에서 오십 일 동안 화엄경을 강설하게 하였다.
황룡사에는 여러 사미승이 있었으나, 묘정(妙正) 사미는 얼굴이 빈상으로 잘 생기지 못하였으나 마음이 어질고 행동이 민첩하여 묘정을 데리고 갔다.
묘정은 지해 대사를 시봉하며 공양이 끝난 뒤에는 금강정(金光井) 우물가에 가서 발우(鉢盂, 식기)를 씻고 있었는데, 우물 속에서 큰 자라 한 마리가 둥둥 떠나와 돌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묘정은 장난삼아 밥 찌꺼기를 모아 자라에게 주었더니 넙적넙적 받아 먹었다.
그 후 묘정 사미가 식기를 씻으러 갈 때마다 자라가 나와 오십 일간 계속하여 밥 찌꺼기를 주었다.
그래서 묘정은 자라를 유일한 친구로 알고 만날 때마다 좋아하였다.
오십 일 법회가 다 끝나고 하루밖에 남지 않은 날, 묘정은 자라를 보고 말하기를,
"너와 같이 오십 일 동안 매일 만나 밥을 주어 정이 들었는데, 내일 법회가 끝나면 너와 만날 날은 내일 한 번뿐이니 매우 서운하구나."
하고 일어서 내전으로 들어갔다.
그 이튿날 묘정 사미가 발우를 씻으러 금강정으로 갔더니 자라가 나왔는데, 무슨 조그만 구슬 하나를 입에 물고 나와 뱉으면서 가지고 가라는 눈치를 보였다.
묘정은 그것을 주워 옷깃 속에 넣고 실로 꾸려 매어 간직하였다.
그 뒤로부터 대신과 장자들도 묘정을 존경하게 되었고, 왕 또한 묘정 사미를 지극히 좋아하여 내전에 불러두고 잠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마침 한 잡간(匝干)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도 또한 묘정 사미를 좋아하여 같이 가게 하기를 왕에게 청하였다.
왕이 허락하여 묘정이 당나라에 들어가 황제를 배알하였더니, 황제도 그를 보고 총애가 비상하였다.
승상 이하 모든 백성이 다 그를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때 한 관상쟁이가 이것을 보고,
"이 사미는 아무리 보아도 한 가지 길상이라곤 없는데 이렇게 사람의 신경과 사랑을 받고 있으니, 반드시 무슨 이상한 보배를 가진 것이 아닌가."
하고 황제에게 아뢰었다.
황제가 사람으로 하여금 묘정의 몸을 검사하게 하였더니 과연 구슬이 나왔다.
황제가 이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짐이 여의주(如意珠) 네 개를 두었다가 작년에 한 개를 잃었는데, 이 구슬은 잃은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구나."
하고 묘정에게 그 출처를 물었다.
묘정이 아뢰길,
"신라국 왕의 내전에 들어가 지해 대사님을 시봉하며 오십 일간 화엄경을 강설하실 적에 날마다 공양을 마치고 금강정에 가서 발우를 씻었는데, 커다란 자라가 둥둥 떠나와 놀기에 밥 찌꺼기를 주었더니 잘 받아 먹어 오십 일을 하루같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오십 일 법회를 마치고 그 자라와 이별하는 날, 자라는 이 구슬을 물고 나와 뱉어 주어 간직하게 하였습니다."
하였다.
황제도 감탄하며,
"정성이 지극하고 마음이 인자하여 짐승을 거두어 먹이기를 잘한 까닭으로 그 신비한 자라가 나의 여의주 한 개를 가져다가 너에게 주었구나."
하고 감탄한 나머지 그것을 빼앗지 않고 잘 간직하며 잃어버리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묘정 사미는 훌륭하게 성장하여 큰 스님이 되었고, 이 구슬 덕분에 왕사가 되어 백성에게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진 마음으로 짐승이나 사람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면 이러한 상서로운 일이 일어난다.
바룻대에 묻은 밥 찌꺼기를 자라에게 보시하고도 그와 같은 큰 공덕을 입은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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