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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약을 먹고 죽은 경주 최성팔 씨 


은해사 강주(銀海寺 講主) 변설호(卞 雪醐) 스님은 1917년 7월 22일 여름방학 때 해인사(海印寺)로 가는 길에 양혼허(楊渾虛), 최진규(崔鎭圭) 세 분과 동반하여, 당시 소문이 자자했던 파계사(把溪寺)의 최성팔이라는 명두(冥頭)를 시험 삼아 만나보고자 파계사를 찾았다. 
파계사의 설파화상을 찾아뵙고 방문 목적을 말씀드리며, 명두란 것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여쭈었더니, 금당 건너편에 유파(劉婆)라는 노인이 함께 있다고 하여 다음 날 아침 세 사람이 유파를 찾아갔다. 
유파는 반갑게 맞이하며
 “지금은 성팔이가 출타하여 없으니 황혼 무렵에 오라”고 하였다. 
세 사람은 저녁 공양을 마치고 어둑어둑해진 무렵 유파를 다시 찾아갔다. 
방 안에는 유파 혼자 있었으나, 유파 곁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나는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성팔이다. 
오시느라 수고 많았다. 
어제 부인사(扶仁寺) 앞에서 오시는 것을 보았는데, 거기서부터 함께 왔으나 여러 스님들은 모른다. 
그리고 수건을 잃으셨지요? 그 수건은 부인사 앞에서 풀 베던 아이가 주워 갔다.”라는 분명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양혼허 씨가 실제로 수건을 잃은 일이 있었다는 점이다. 
성팔이의 음성은 청아하고 또렷한 남자 목소리로, 보통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으며 전혀 무섭지 않았다. 
유파는 말없이 앉아 있었고, 성팔이와 대화 중이었다. 
성팔이가 문득
 “여보게, 잘 오셨네. 오늘은 무엇을 했는가?”라고 묻자, 문 밖에서
 “아무 일도 없었네”라는 대답이 웅장하고 힘차게 들려왔다. 
세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방안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고, 마치 성팔이가 곁에 앉아 있는 듯한 육감이 들었다. 
성팔이는 세 사람에게 인사를 시키며
 “나는 천왕이라고 하는데, 이 근처에 있으면서 파계사 경내를 수호한다”고 소개했다. 
세 사람은 천왕과도 대화를 나누었고, 성팔이와 천왕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생생히 들었다. 
이때까지 불은 켜지지 않았으나, 달빛이 은은하여 그리 어둡지 않았다. 
내일 저녁에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숙소로 돌아와 생각하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다음 날 밤 다시 파계사를 찾았더니 성팔이가 다른 이와 대화 중이었는데, 연약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성팔이에게
 “같이 말하는 이는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이 사람은 나이 열여섯 살 되는 여자 태순인데, 나와 장래에 결혼할 여자다. 
본래 경북 안동군(현재 안동시) 일직면의 어느 마을에서 장모의 딸로서 2년 전에 사망했는데, 매월 초하루와 보름 두 차례 명부점고(冥府点考)에 와서 나를 의탁하고 있다.”고 했다. 
귀신의 고락을 물으니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기갈(飢渴)의 고통”이라고 답했다. 
길흉화복을 묻자 과거사는 말하나 미래사는 명부의 책벌이 있어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성팔이의 과거사를 묻자
 “나는 경주 교촌(慶州敎村) 최씨의 아들로, 16세 때 복약 중 사고로 죽었다. 
선악 간에 업을 지은 것은 없고, 명은 남았으나 몸은 죽어 중음신(中陰神)이 되어 있다. 
지금부터 천삼백 일 후면 중음 기간이 끝나고 인간 세상에 환생할 때가 된다.”고 하며, 염라대왕의 소개로 지장보살님을 항상 생각한다고 했다. 
문답 중 태순이가 갑자기
 “저 나쁜 놈 온다”라며 뒷문으로 피한 듯하더니, 곧 억센 남자 음성이 들렸다. 
마침 그때 천왕이 들어와
 “야, 이놈!” 
하며 쏜살같이 사라졌다. 
천왕은 성팔이와 세 사람에게 인사하고 여러 시간 대화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지자 배가 고프다며 무엇을 사 먹으러 가자고 했다. 
천왕이 음식을 사자고 권하자, 수고스럽지 않으니 천왕이 사달라고 하였다. 
오늘은 금오강신(金烏降神)이 어디 가서 없으니 그 밖의 신들은 괜찮다고 하며 어디서 사올까 묻기에 대구 남문 밖 아무 집에 가서 사오라 했다. 
최진규 씨가 50전 은화 두 닢을 내놓자, 천왕은 지폐 1원짜리로 바꿔달라고 하였고, 유파에게 주전자와 목쟁반을 빌려 내놓으니 물건은 홀연히 사라지고 천왕의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약 30분 후 후유(後遺) 소리가 나며 주효(酒壺)가 방 안에 놓였다. 
천왕과 성팔이에게도 주효를 권하니 잘 먹었다고 했으나, 주효는 그대로 있었다. 
남은 주효는 다음 날 먹어보아도 분명한 주효였다. 
그날 밤에도 다시 가서 놀다가 음식 사 먹자고 하니, 그날은 금오강신이 있어서 못 가겠다고 거절하며 신형(身形)을 보여 달라고 하니 명부의 책벌이 있어 거절했다. 
이 밖에 여러 가지 들은 이야기는 약술한다. 
(이 글은 1917년에 변설호 강백(卞 雪醐 講伯)께서 영천 은해사 강주(永川銀海寺 講主)로 계실 때, 본사인 해인사로 가는 길에 여름방학을 이용해 일부러 파계사에 들러 실제로 신(神)과 대화한 내용을 『불교』 38호에 게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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