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몽암 화상의 반모득병(反母得病)
지금(2019년)으로부터 약 140여 년 전, 어느 해 삼남 지방에 큰 흉년이 들어 동리마다 부황이 나서 누워 있는 사람이 많았고, 여기저기서 굶어 죽었다는 소식에 살아 있는 사람도 산 것 같지 않고 허수아비처럼 보였으며, 환장한 사람도 종종 있었다.
그때 경남 산청군 늘보라는 동리에 사는 과부 한 사람이 두 살 먹은 유아를 업고 흉년이 들지 않은 윗녘으로 가서 걸식이라도 하며 아비 없는 불쌍한 어린아이를 살려보려는 결심을 가지고 함양 땅 엄천을 지나 지리산 밑 마천에 들어서 당벌 동리 앞까지 오다가, 며칠을 굶은 몸이라 기진맥진하여 도저히 어린아이를 업고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을 만큼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를 버리고 나만 살아야 하나? 둘 다 죽어야 하나?”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다.
“천지신명이시여, 이 어린아이를 돌봐 주소서. 자식 없는 부모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어미의 인정은 아닙니다마는, 살 수 있는 데까지 두 목숨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미의 인정은 아니지만 살 수 있는 데까지 두 목숨이 다 살아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어린아이를 너덜겅에 돌담을 쌓아 두고 버려두고 울다가 앉았다가, 물을 움켜쥐며 창자를 채워가며 있노라니 어떤 스님이 아기를 안고 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어디로 가시는지 확인한 후 걸어서 운봉 땅 소군이라는 동리에 올라가 어느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은 홀아비 집이라 그 집에서 생명을 건지고 살게 되었다.
한편, 당벌 앞에서 어린아이를 주워온 스님은 지금은 국보 사찰인 실상사(實相寺) 산내 암자인 약수암(藥水庵)에 계시는 혜암대사(惠庵大師)로, 어디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곳을 지나가다가 얼핏 어린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 찾아가 보니 돌담 속에서 아이가 울고 있어 꺼내 보니 뼈와 살, 가죽만 명태처럼 말라붙은 상태였다.
스님은 아이를 안고 와서 밈죽으로 살려 키웠더니, 그 아이가 장성하여 이름 있는 큰 스님이 되었다.
그 어머니도 거기서 20리 거리에 살면서 약수암 대사가 주워다 키워 훌륭한 큰 스님이 된 줄은 분명히 알면서도 차마 내 자식이라고 찾아갈 체면과 용기가 없어 그날그날을 오늘 내일 미루다가 어느덧 늙어 언제 죽을지 모를 고비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아들은 크게 되어 몽암(蒙庵)이라는 건당법호(建堂法號)를 받고 제산에 이름이 알려질 만큼 훌륭한 대사가 되었다.
어머니가 차차 늙어가자,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 죽기 전에 만나서 맺힌 한을 풀어보자 하고 옷 한 벌을 지어 가지고 약수암을 찾아가 온 뜻을 이야기하였다.
몽암은 듣고
“나는 부모도 없는 놈이다”라며 부대불면(不對不面)한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무참하고 노여워서 울며 돌아갔다.
자기 한 일은 생각하지 않고 대면조차 거절하는 아들 스님에 대해 서럽고 섭섭한 마음이 가슴에 철못처럼 박혔던지 항상 괘씸하게 여기고 있었다.
몽암 대사는 어머니가 왔다가 간 뒤로 우연히 구미(九微)를 읽고 몸이 철골이 되어 수년 동안 뇌점으로 고생하다가, 어느 문복쟁이에게 들으니 생불(生佛)이 틀어져서 그런 것이니 살려면 생불을 달래야 한다고 하였다.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마음이 서운한 까닭이라 여겨 음식을 장만하고 옷을 지어 가지고 어머니를 찾아가 사죄하였다.
어머니도 마음이 풀려 자주 왕래하는 길이 열리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몽암 대사의 병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부모의 마음이 서운하면 자식 일이 잘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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