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제가 저지른 살인죄로 7년 후에 처벌을 받다.
전라도 지리산의 어느 큰 고개 아래에 주막집이 있었다.
어느 시골에서 생사(生絲, 명주실) 장사를 하는 상인이 실을 팔아 돈을 지고 오다가, 그 주막에서 투숙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주인집에는 마침 유흥과 도박으로 돈을 잃고, 돈에 환장한 악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이 상인이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그 이튿날 상인이 가는 길목을 미리 잡아 산속에 숨어 있다가, 무인지경에서 칼로 상인의 등줄기를 쳐 죽이고 거금을 강탈하였다.
그 후 한참 동안 음주와 도박으로 세월을 허비하며 지냈다.
어느 때, 그 악한 사람의 아내가 만삭이 되어 옥동자를 낳았다.
아내가 아이의 목욕을 시키다가 보니, 아이의 어깨줄기에 붉은 띠처럼 기다랗게 핏줄기가 부스럼 모양으로 뻗어 있었다.
보기 흉하여 씻어주고 약을 발라 주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내가 남편에게 무슨 약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자, 남편이 와서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얼마 전 자신이 죽인 상인의 등줄기에 칼이 꽂힌 자국과 꼭 같아 보여,
“아, 이것은 죽은 실장사가 원수 갚으려고 태어난 것이니, 이 아이가 참으로 자식 노릇 할 아이가 아니다.”라며 갑자기 공포심이 생겼다.
그래서 다음에 아내 몰래 틈을 타 두 손가락으로 아이의 코를 꼭 쥐어 질식시켜 죽여 버렸다.
그 이듬해에 또 남자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두 손가락으로 코를 꼭 쥔 것처럼 코가 홀쭉하게 생겼다.
그리고 어깨에는 붉은 띠가 진 것 같은 흔적이 뚜렷했다.
아마도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과보임을 깨닫고, 다시는 아이를 죽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공포심과 두려움 때문에 부인에게 사실대로 모두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남편이 죽은 뒤, 부인이 관에 신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상인을 죽인 지 칠 년 만인 어느 여름날 밤늦도록 노름을 하고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니, 남포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그대로 두고 떨어져 곤히 잠들었다.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자다가 일어나 소변을 보러 나가다가 남포불을 덮쳐버렸고, 그 불이 아버지의 몸에 쏟아진 기름에 붙어 악한 아버지는 기름불에 타 죽고 말았다.
그날 밤이 바로 생사 장사의 제사날 밤이었다고 한다.
(『삼세인과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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