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백은 선사(白隱禪師)의 인욕
오늘은 인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특히 지금 우리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일본의 스님, 백은선사의 이야기를 예로 들고자 한다.
왜냐하면,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참을성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 백은선사에 관한 비유를 통해 참을성의 중요성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백은선사는 일본 임제종의 저명한 종장이다.
어느 부유한 신도가 백은선사의 고덕을 존경하여 많은 재물을 공양하고, 항상 부처님처럼 숭배하였다.
백은선사도 그 집에 가시기도 하고 부호 신도 역시 백은선사를 찾아가면서 온 집안 식구가 내외 없이 친밀하게 지냈다.
어느 날, 그 부호의 딸이 집 하인 청년과 눈이 맞아 임신 만삭이 되었고, 남자아이를 낳았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딸이 아이를 낳다니, 이것이 무슨 망조냐!"라며 입안이 뒤집히도록 호통을 쳤다.
상대가 대체 어떤 놈이냐며, 만약 앞에 있으면 곧 죽일 것 같았다.
이에 딸은 꾀를 내어, 아버지가 백은선사를 부처님처럼 숭배하고 있으니 '백은선사'라고 하면 무사할 것 같아 아버지를 속여 백은선사와 관계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노기가 충천하여
"이 흉칙한 놈을 내가 십 년 동안이나 속아서 부처님처럼 믿고 공양했구나!"라며 아이를 안은 채 백은선사 앞으로 던지며
"이 흉칙스러운 중아, 네 자식 네가 길러라!"
하고 불경스러운 욕설을 퍼부었다.
백은선사는
"이게 웬 아이인가?"
하고 묻자, 아버지는
"무슨 잔소리냐, 네 자식 네가 잘 길러라!"
하고 돌아서 가버렸다.
백은선사는 조금도 변색하지 않고
"아, 그런가."
하며 아이를 받아 엿을 사다 먹이고, 자기 자식처럼 귀엽게 품어 길렀다.
근방 사람들도 그 아이를 꼭 백은선사의 아들이라고 믿었다.
부호의 딸은 백은선사의 애매한 처지를 억울하고 민망하게 여기면서도, 하인과의 관계 때문에 나서지 못하고 항상 소식을 잘 듣고 있었다.
어느 겨울 날, 눈이 펄펄 내리는 가운데 백은선사가 아이를 안고 탁발을 나갔는데, 아이의 어머니인 부호의 딸이 그것을 보고 크게 후회하며 울면서 아버지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백은선사의 억울하고 애매한 처지를 하소연하였다.
그 아버지는 이를 듣고
"몹쓸 자식아, 너 때문에 부처님 같은 백은선사에게 사죄할 수 없는 대죄를 지었구나."
하며 백은선사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였다.
백은선사는 털끝만큼도 마음에 걸림 없이
"아, 그런가. 이 아이에게도 아버지가 있구나."
하며 아이를 돌려주었다.
그로부터 세상 사람들은 더욱 백은선사의 음덕을 찬양하였고, 그 부호 신도는 더욱 백은선사에게 귀의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참된 인욕이요 음덕이다.
(『일본 고승열전』에서)
0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