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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혜숙 화상(惠宿 和尙)의 생사자재

 

신라 제26대 진평왕(579~632년)은 혜숙화상의 법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흠모하여 사신을 보내 왕궁으로 모셔 오도록 하였다.

사신은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혜숙화상을 모시러 갔는데, 뜻밖에도 도덕이 높고 법력이 뛰어나다던 혜숙화상이 여자와 함께 침실에서 누워 있었다.

이를 본 사신은 몹시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도덕이 훌륭하고 법력이 뛰어나다고 하여 나라에서 모시러 왔는데, 여자와 침실에서 함께 누워 있다니 존귀할 것이 전혀 없고 오히려 더럽게 여겨져 혼자 돌아와 임금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기로 결정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혜숙화상을 다시 만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방금 여자와 함께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스님께

"어디 다녀오십니까?"라고 물으니,

"성중 어느 신도 집에 가서 칠일재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와 그 신도 집에 찾아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였더니, 과연 그것이 사실이었다.

얼마 후 혜숙화상이 돌아가셨다.

근방 사람들이 모여 이현이라는 곳 동쪽 산에 장사를 지냈다.

그때 마침 한 마을 사람이 서쪽 이웃 마을에 갔다가 동쪽으로 돌아오는 도중 혜숙화상을 만나 인사를 드리고

"어디 가십니까?"라고 묻자, 혜숙화상께서

"여기서 오래 살았으니 이제는 다른 데로 가서 유람하려 한다"고 대답하시며 작별하였다.

그 사람이 동쪽을 향해 돌아오다 보니, 혜숙화상이 죽어 장사를 지낸 사람들이 아직도 흩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조금 전에 오다가 다른 데로 유람 가신다는 말을 듣고 작별 인사까지 했는데, 죽었다니 무슨 소리인가?"

하며 무덤을 파보니 아무것도 없고 오직 집신 한 짝만 있을 뿐이었다.

이것이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이치를 깨달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면 생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불가사의한 법력을 마음대로 수용하기 때문에, 좌탈입망(坐脫立亡), 즉 이 육신을 헌옷 벗어 버리듯 벗어 던지는 것이 조사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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