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호랑이로 환생한 처녀
우리나라 삼보 사찰 중 불지종찰인 통도사에서 약 5km쯤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내 암자 중 하나인 백년암이라는 아담한 암자가 있다.
그곳에 참선을 잘하신 스님 한 분이 살고 계셨는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오래전 이야기다.
그 스님은 체격이 훤칠하고 미모가 수려하여, 귀공자다운 의젓한 품위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젊은 스님이었다.
그 아랫동네에 사는 한 처녀가 어머니를 따라 몇 번 절에 왔다가 그 스님을 알게 되어 사모하게 되었다.
처녀는 여러 차례 추파를 던지고 갖은 수단을 다 써 보았으나, 스님은 애타는 처녀의 마음을 모른 체하고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하여, 처녀를 대하는 태도는 무표정하기만 했다.
그러자 편애의 정에 몸져눕게 된 처녀는 할 수 없이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여, 어머니를 통해 스님께 사랑을 고백하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 스님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게 되어 아무도 모르게 바랑을 지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스님이 자취 없이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처녀는 혼자 가슴을 태우며 생기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스님은 이제야 그 처녀도 시집가서 잘 살겠지 하고 백년암으로 다시 돌아와 조실 스님이 되었다.
어느 날 큰 범 한 마리가 암자에 나타나 '어흥!' 하고 산이 울릴 듯한 소리를 지르며 설치다가 선실 앞에 와서 떠나지 않았다.
스님들은 무슨 사연이 있는 듯 생각했다.
그래서 대중 스님들이 차례로 옷을 벗어 던졌는데, 다른 옷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조실 스님의 윗옷만 받아 깔고 앉았다.
그리하여 조실 스님이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가자, 범은 번개같이 조실 스님을 들쳐 업고 산으로 올라가 버렸다.
여러 스님들이 뒷산을 더듬어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조실 스님은 마치 잠든 듯 죽어 있었는데, 시체를 운반하려고 자세히 보니 다른 곳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고 남성기만 싹 잘려 먹혔다는 실화가 전해진다.
이것은 뼈에 사모했던 처녀의 원혼이 범이 되어 복수한 것이다.
남에게 원한을 품으면 범이나 독사, 지네 따위의 독충이 되어 자기부터 먼저 괴로움을 받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애욕의 결과가 뱀이나 개로 태어나는 이유는, 이 동물들이 모두 애욕이 많기 때문이다.
뱀과 개가 동물 중에서 교미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것도 이러한 원인 때문이다.
또한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면 구렁이나 개가 되어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색을 피하기를 불구덩이 같이 하고, 보석을 보기를 독사같이 보라"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도사 백련암 사적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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