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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백장야호화(百丈野狐話)

 

80. 백장야호화(百丈野狐話)

백장회해선사(百丈懷海禪師)는 그가 주석하던 산 이름이 백장산이었기 때문에 '백장'이라는 호를 갖게 되었다.

그는 근면과 절약으로 천추에 모범이 되었으며, 저 유명한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시종일관 대중을 지도 편달하였다.

그는 백발이 성성해도 하루 종일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대중 스님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민망하고 죄송스러워서 일하는 연장을 모두 감추었더니, 선사는 그날부터 단식을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연장을 다시 내드리니 여전히 일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친히 몸소 실천의 모범을 보여 주었으며, 특히 '백장청규(百丈淸規)'라는 총림에서 시행할 규칙을 만들어 오늘날까지 그 거룩한 유풍을 전하고, 공부인의 생활 거울이 되고 있다.

어느 때 백장선사께서 대중을 거느리고 설법을 하시는데, 설법할 때마다 번번이 어떤 노인이 말석에 앉아 대중과 함께 듣고 함께 물러가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설법이 끝나고 대중은 모두 물러갔으나 그 노인만은 가지 않고 여전히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선사는 의아하여 말을 걸었다.

"게, 노인은 누구시오?"

"예, 저는 사람이 아니옵니다.

실은 저도 화상과 같이 과거 가섭불 시대에 바로 이 도량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인이 묻기를, '대오 견성한 대선지식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하기에 '불락인과(不落因果)'라고 대답하였더니, 그 후 오백 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았습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 옳은 법문을 설해 주시어 이 여우의 탈을 벗게 하여 주옵소서."

노인은 간절하게 소원하였다.

백장선사가 흔쾌히 응낙하니, 노인은 옷깃을 바로 여미고 정중하게 여쭈었다.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은 선지식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백장선사께서

"불매인과(不昧因果), 즉 인과에 어둡지 않다!"라고 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즉시 대오하여 희색이 만면해지고 공손히 예배한 후,

"저는 이제 여우의 탈을 벗었습니다.

이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저의 시체가 뒷산 석굴에 있을 테니, 돌아가신 스님들의 전례대로 장사를 지내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는 문득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백장선사는 유나(維那, 승당의 여러 지도를 맡은 자)를 불러 대중에게 통보하여 공양 후에 망승의 장례식이 있으니 대기하라고 전하였다.

대중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며, 누구 하나 편치 않은 사람이 없고 열반당에는 환자도 없는데 무슨 장례식인가 하고 수선거렸다.

공양 후 선사는 대중을 인솔하여 뒷산으로 올라가 바위 밑 굴 속에서 죽은 여우 한 마리를 발견하여 지팡이로 끌어내었다.

그리고 망승의 예로 장사를 치른 후, 그날 밤 여우에 대한 인연설법을 하셨다.

이때 법문을 듣고 있던 황벽(黃檗)이 문득 일어나 묻기를,

"전백장은 한마디 법문을 잘못하여 오백 생 동안이나 여우의 몸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만약 그때 일언일구의 털끝만치도 틀림없이 대답하였다면 그 후 무슨 몸을 받았겠습니까?"

하였다.

선사는 이 질문을 듣고

"오, 잘 물었다.

가르쳐 줄 테니 이리 오너라!"

하였다.

황벽은 서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스승인 백장선사의 뺨을 보기 좋게 후려쳤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찰나의 일이었다.

맞은 선사는 화를 낼 줄 알았으나, 화는커녕 도리어 손뼉을 치며 호탕하게 웃으면서

"오랑캐의 수염이 붉다고 하더니, 참으로 붉은 수염의 오랑캐가 있도다!"

하였다.

이 '백장야호화'는 옛적부터 많은 공부인들이 난제로 취급해 오고 있다.

무문 혜개선사(無門慧開禪師)는 이에 대해 평창하시길, '불락인과'라고 답하여

"무엇 때문에 여우의 탈을 썼으며, '불매인과'라고 듣고 무슨 까닭으로 여우의 탈을 벗었는가. 만약 여기에 일척안(一隻眼, 이치를 바로 보는 밝은 눈)을 얻으면 문득 전백장이 여우의 몸을 받아 오백 생 동안 풍류삼매 속에서 유희한 묘미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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