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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고려 천축조사 이야기

 

경기도 강화에 고려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높이는 430미터이며 예전에는 울창한 수목이 무성했다고 한다.

이 산의 동쪽에는 청연사, 남쪽에는 적연사, 서쪽에는 백연사가 있었는데, 첩첩산중에 이처럼 가람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자의 인도가 필요했을 것이다.

고려 충렬왕이 즉위하여 나라를 다스릴 때, 지금의 인도인 천축국에서 한 고승이 입국했는데, 그를 천축조사라고 불렀다.

이 고승은 고려가 불연이 깊은 땅임을 절실히 느끼고 절을 하나 세우려고 마음먹고 여러 곳을 순례했으나 별로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는 혼잣말로

"넓은 천지에, 더구나 불연이 깊은 나라에서 내가 절을 하나 세울 만한 자리가 없단 말인가?"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방방곡곡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강화 고을까지 오게 되어 이곳을 여기저기 순례하다가 날이 저물어 인가가 없는 산기슭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밤 비몽사몽간에 백발 노인이 홀연히 나타났다.

천축조사가

"아니, 노인 어른은 대체 누구시오?"

하고 물었다.

노인이

"나는 부처님께서 보낸 사자요."라고 하자, 천축조사가

"부처님의 사자라고요?"

하니 노인은

"그렇소. 그대가 천축국을 떠나 고려 땅까지 건너와 사찰을 건립하겠다고 천하를 두루 돌고 있으나 마땅한 터를 구하지 못하고 한탄하는 마음을 가없이 여기어 부처님께서 나에게 절터를 잡아주라고 보내서 온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대는 내일 이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시오. 그러면 그대가 찾는 좋은 자리를 얻게 될 것이오."

하며 산의 정상을 가리켰다.

천축조사는 고마움에 깊이 예를 표하였다.

조사가 허리를 굽혀 예를 마치고 일어서자 노인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리하여 노인을 큰 소리로 부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천축조사는 비록 꿈이었으나 예사로운 꿈이 아님을 깨닫고 날이 밝자 노인이 시키는 대로 산봉우리로 올라갔다.

그 산이 바로 고려산이었다.

한참 동안 땀을 흘리며 천축조사가 산을 올라가 보니 그곳에는 다섯 개의 연못이 있었다.

천축조사가 주위를 살펴보니 고려가 이토록 부처님의 성지가 될 수 있는 땅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산이 수려했으며, 수만 리 펼쳐진 망망대해는 오직 이곳을 위해 존재하는 듯하였다.

"허허, 과연 부처님의 자비하신 분부를 받들고 나타난 노인의 말대로 너무도 흡족하구나!"

천축조사는 새삼 탄복하며 사방을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천축조사가 보니 약간의 거리를 두고 모두 엇비슷하게 좋은 자리여서 이곳이다 하고 잡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다섯 군데 연못에는 각기 다른 빛깔의 연꽃이 피어 있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저 연꽃을 공중에 날려서 떨어지는 곳마다 절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여 다섯 군데 연못을 차례로 다니며 연꽃을 따서 공중으로 날렸다.

그러자 연꽃은 바람에 날려 제각기 세 곳에 떨어졌다.

천축조사는 연꽃이 떨어진 세 곳에 각각 절을 짓고 연꽃 빛깔에 따라 절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강화군 강화면 서쪽 고려산에는 청련사, 백련사, 적련사가 있었는데, 적련사는 그 후 적선사로 이름을 고쳤으나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 세 가람의 동남방 산록에는 몽고 침입 시 환궁하지 못하고 애통히 눈을 감은 고려 고종이 묻힌 홍릉이 있다.

(어제 강화 고려사를 다녀와서 생각이 나 고려산 이야기를 적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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