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금욕의 공덕과 태전선사(太顚禪師)의 사례
중국의 태전선사께서 축융봉(祝融峯)에서 수행하고 계실 때, 많은 단월들이 선사를 부처님처럼 받들었다.
그때 그 지방의 자사로 부임한 한퇴지(韓退之)는 불교를 적극 반대하는 유생이었기 때문에 태전선사를 섬기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에 그는 이 고을에서 가장 뛰어난 기생들을 모두 모아놓고
"누구든지 축융봉에 가서 태전이라는 중을 파계시키면 천금의 상을 주겠다."고 선언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인물이 뛰어나고 수단이 좋기로 유명한 홍연이라는 기생이 나서서
"제가 가서 그 중을 파계시키고 오겠습니다."라고 하자, 한퇴지는
"음, 그래. 그러면 약속을 해야 한다.
파계를 시키면 천금의 상을 주는 대신, 파계를 못 시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기한은 100일로 정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홍연은 자신의 인물과 수단을 믿고 자신만만하게 약속을 정한 뒤, 소복단장하고 태전선사를 찾아가
"저는 남편을 잃고 혼자 되었으니,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100일 동안 정성껏 기도를 올리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선사께서는
"그렇다면 그렇게 하여 보라."고 승낙하셨다.
(절집에서는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을 붙들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그날부터 절에서 기거하게 된 홍연은 기도는 하지 않고, 남자의 욕심을 자극할 만한 좋은 향수와 고급 분 냄새를 풍기며, 정이 담뿍 서린 눈으로 빨아들일 듯한 요염한 교태와 솜씨를 다해 화장을 하고 맵시를 부렸다.
입의 혀 같은 시중도 들었다.
그러나 선사는 닷새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이에 홍연은 터질 듯 부푼 가슴과 아름다운 허리를 과시하며, 하늘거리는 분홍색 비단 옷을 몸에 꼭 맞게 입고 요염한 자태를 최대한 부리며 유혹하였다.
그러나 선사께서는
"남편의 명복을 빈다는 여인이 이게 무슨 짓이냐."는 꾸중 한 마디 없이 본래 모습 그대로였다.
홍연은 천금의 벼락부자가 되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였으니,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유혹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선사께서는 한결같이 무표정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째 접어들자 초조해진 홍연은 한층 더 적극적인 방법을 썼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옷 보따리를 들고 한 방으로 들어가도 아무 말이 없고, 옷을 갈아입을 때나 잠잘 때에는 우단처럼 부드럽고 흰 육체의 곡선미를 드러내는 정도를 넘어선 잠꼬대인 척하며, 매끄럽고 둥근 허리와 밑으로 처질 듯 부푼 가슴을 갖다 비비고, 토실토실하고 매끄러운 팔다리로 선사에게 다가가 껴안기도 하였다.
그러나 선사는 시종일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잠깐씩 누웠다가 일어나 공부하는 것 외에는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았다.
날짜가 가는 것을 초조해하는 홍연의 마음과는 달리 세월은 흘러 약속한 기한이 한 달밖에 남지 않게 되자, 홍연은 더욱 결사적으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순수한 나체로 선사의 손을 끌어다 자기 젖무덤에 갖다 문지르기도 하고, 부드럽고 탄력 있는 입술을 갖다 비비기도 하며, 선사의 몸까지 남김없이 주무르다 나중에는 자기 흥분에 못 이겨 열광적인 발동을 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한 이불 밑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체취와 몸부림치는 나체 세례를 백일간이나 받았으나, 초과 공부가 끝나 마음장상(馬陰藏相)이 된 태전선사는 남근이 움직일 리 만무하였다.
여인의 나체 촉감이나 이불 촉감이나 분별 망상이 끊어진 선사의 고요한 마음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이를 자기 시험의 공부로 삼았다.
재색에 뛰어난 홍연은 자신만만하게 큰소리 쳐놓고 갖은 교태와 요염한 행동으로 별별 수단을 다 써 보았으나, 목석 같은 태전선사를 파계시키지 못하고 백일째 되던 날, 홍연은 소리 내어 슬피 울었다.
그러자 선사는
"왜 우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홍연은 사실을 처음부터 낱낱이 이야기하며
"제가 죽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와 같은 큰 스님을 찾아놓고 이제 내려가면 다시는 뵙지 못할 것이 한이 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태전선사께서는
"오! 그러냐. 그렇다면 치마폭을 벌려라."고 하셨다.
홍연이 치마폭을 펴 들자, 태전선사는 거기에 게송을 써 주시며
"너를 죽이려 하는 사람에게 보여라. 그러면 죽음을 면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 길로 내려온 홍연은 본부 자사 한퇴지 앞에 엎드려 그간의 경과를 자세히 고하고 치마폭에 쓴 게송을 보여주었다.
십 년 불하 축융봉(十年不下祝融峯) 관색관공색즉공(觀色觀空色卽空) 여하일적조계수(如何一滴曺溪水) 긍타홍연일엽중(肯墮紅蓮一葉中)
십년 동안 축융봉을 내리지 않고 색도 관해보고 공도 관해보니 색이 곧 공이더라. 어떠한 한 방울의 조계수기에, 홍연의 몸 가운데에 버리기를 좋아할까 보냐?
이와 같은 게송을 읽은 한퇴지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분은 너의 힘으로 파계시킬 분이 아니니, 너를 죽이지 않겠다.
그분은 진짜 도인이시다.
내가 직접 찾아가 뵙고 사죄를 올려야겠다.
이렇게 하여 한퇴지는 태전 선사를 찾아가 백배로 사죄하고 감화를 받아, 선사의 모든 식량과 생활비를 전적으로 지원해 주었던 것이다.
(『고승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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