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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경북 예천 고평리 약포(藥圃) 정탁선생의 초상을 모신 정충사

 

선생(鄭琢, 1526~1605) 께서 별세하시자 입관할 때 둘째 며느리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진주 구슬 두 개를 넣어 매장하였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약포 선생이 사시던 이웃 마을에 사는 이재응이라는 사람이 어머니가 아파서 밤중에 약을 지으러 가던 중, 앞에서 어떤 대감 행차가 다가오자 무서워서 얼른 길가의 바위 뒤에 숨어 그 행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 행차가 가까이 오더니 길을 멈추고 숨어 있는 이재응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재응은 깜짝 놀랐다.

"이상한 일이다.

어두운 밤에 숨어 있는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알까?"

하고 자못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대감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데 안 나갈 수 없어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하니, 그 대감은

"내가 정 약포일세!"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는

"정대감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별세하신 줄로 아는데요?"라고 말하니, 대감께서

"자네 말이 맞네. 오늘 저녁이 내 제사날일세. 지금 제사를 받고 막 가는 길인데, 자네한테 부탁할 말이 있어서 자네를 불렀으니, 자네는 지금 모친 약을 지으러 가는 길이 아닌가?"라고 하셨다.

재응은

"예, 그러하옵니다."라고 대답하자, 대감께서

"자네 모친 병은 우리 집에 가면 좋은 약이 있을 것이니 그 약을 가져다 쓰면 곧 완쾌될 것이네. 그리고 자네가 지금 이 길로 우리 집을 찾아가면 제사를 마치고 모두 음복을 하고 있을 것이니, 길에서 나를 만났다는 말을 하고 내 둘째 며느리를 속히 파혼시켜 친가로 돌려보내며 족보에서 그 이름을 삭제하라고 일러주게. 그러나 내 자손들이 이 말을 곧이듣지 않을 것 같아 그 증거를 보이려고 내 관 속에 넣었던 진주 구슬 두 개를 둘째 며느리 농위에 갖다 놓았으며, 또 내가 보던 서전책 갈피에 은으로 만든 이쑤시개가 있을 것이니 그 이야기까지 하여 내 말을 믿도록 해주게."

하시고 말씀을 마치자, 약포 대감의 행차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재응은 너무 이상하여 대감이 시킨 대로 약포 대감의 집에 가보니, 제사를 마치고 모두 음복을 나누어 먹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 전 대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하자, 농위에 갖다 놓은 진주 구슬과 책갈피에 이쑤시개가 틀림없이 확인되었다.

재응은 약을 가져다가 모친의 병을 고쳤으며,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둘째 며느리 친정집이 역적으로 몰려 그 친척까지 멸족당하게 되었을 때 약포 대감 댁까지도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파혼되어 둘째 며느리의 이름은 족보에서 삭제되어 있었으므로 역적의 앙화를 모면했다고 전해진다.

조상신이 자손을 도우는 일이 많지만, 이와 같이 확실한 증거가 있는 실례는 흔치 않다.

지금도 약포 대감의 15대 종손이 정충사를 지키고 있으며, 그 후손들은 이 이야기를 더욱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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