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울진현령(蔚珍縣令)의 사후 환생 기적
옛날 울진 고을에 백극제(白克齊)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그는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해 극히 빈곤하였다. 그는 오직 글을 읽어 대과에 급제하여 입신양명하겠다는 일념으로 십 년간 글만 읽고 공부에만 힘썼다. 그러므로 그의 부인은 남편의 수입이 없어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느라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었다. 남의 집 삯바느질 품을 팔아가며 근근이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는 고생살이를 하였다.
그러던 중 남편 백극제가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였고, 강원도(당시 강원도, 지금은 경상북도) 울진현령으로 제수되어 부임하였다. 이는 일문의 영광이자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분수 밖의 복이었는지, 현령은 석 달 만에 갑작스러운 유행병인 열병에 걸려 졸지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부인은 뜻밖의 일에 기절하고 말았다. 좌우 사람들이 두 초상이 나는 줄 알고 열심히 응급치료를 하였다. 얼마 후 부인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냉정히 생각한 듯 이방을 불러 말하였다.
"이 근처에 신령한 부처님이 계신 절이 없겠는가?"
이방이 대답하길,
"예, 이 고을 서쪽에 불영사(佛影寺)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에 모신 부처님이 대단히 영험이 많다고 합니다."
하였다.
부인은 오일장으로 장사를 지내려던 상여에 모신 영구를 그대로 불영사로 모시라 하였다.
"신성한 절간에는 기도를 하러 가거나 사람이 사망한 뒤 그의 천도를 위하여 사십구재나 백일재를 지내러 가기는 하되, 절간이 공동묘지가 아닌 이상 죽은 시체를 모시고 가는 법은 없습니다."
하고 이방이 반대하였으나, 부인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무슨 잔말이냐."
하며 호통을 쳤다.
결국 아전들은 불복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면서도 낮은 소리로
"저 부인이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다. 죽은 시체를 끌고 가면 부처님인들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하며 빈정거리고 코웃음을 쳤다.
상여는 불영사로 갔다. 사중 스님들은 놀라
"이게 웬일이냐."
하며 상여가 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현령의 부인이 호령하여 상여는 문밖에 놓아두고, 시체가 모셔진 관만 운구하여 절 안 탑 앞에 내려놓았다. 부인 자신은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 앞에 엎드려 향을 사르고 지극한 정성으로 축원하였다.
"부처님, 부처님이시여! 저의 가장이 천명으로 죽었다면 다시 여기까지 올 것이 없습니다만, 불행히도 유행병에 걸려 죽었으니 이는 반드시 횡사요 귀신의 침범이오니,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크나큰 자비의 은혜를 베푸시어 어떻게 하시든지 그를 다시 살아나게 해주시옵소서."
하고 관세음보살을 사흘 밤낮으로 일심정력으로 부르고 빌었다. 스님들과 옆 사람들이 제지하였으나 부인은 막무가내였다. 이에 스님들도 부인을 측은히 여겨 목탁을 들고 나와 함께 염불하고 축원하였다.
그런데 부인은 빌다가 지쳐 잠깐 졸았는데, 문득 한 귀신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달아나면서
"나는 과거에 너의 남편과 원수를 맺었으므로 세세생생 너의 남편이 잘되기만 하면 잡아가고 잡아가고 하였는데, 이제 부처님의 자비하신 광명이 비쳤으므로 십 세에 맺혔던 원한이 풀렸으니 살려놓고 간다. 이제 다시는 따라다니지 아니할 터이니 안심하고 너의 남편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아라."
하고 가버렸다.
부인은 놀라 깨어 급히 내려가 관을 열어보니, 그 남편 백극제가 다시 살아 숨을 쉬고 있었다. 부인은 남편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 뒤로 그 탑료를 환희료(歡喜寮)라 고치고, 불전을 환생전(還生殿)이라 고치며 금자법화경칠권(金字法華經七券)을 써서 불영사에 봉안하였다. 현령 부인은 열녀로 나라에서 표창받았고, 불영사는 영험도량으로 크게 이름이 알려졌다고 한다. 또한 백극제는 나이 구십까지 살았으며, 벼슬이 높아져 재상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불영사 사적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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