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법보기단경발 (六祖法寶壇經跋)
태화(泰和) 7년(2012년) 어느 날, 수선사(修禪社) 내 도인 담묵(湛黙)이 책 한 권을 들고 방에 찾아와 나에게 말하였다.
「이것이 요즘에 얻은 『법보기단경』인데, 다시 발간하여 세상에 널리 전하고자 하니 스님께서 그 발문을 써주십시오.」
나는 기꺼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내가 평생에 종지(宗旨)로 이어받아 닦고 배우는 귀감(龜鑑)이다. 그대가 지금 중간하여 후세에 펴려 하니 이는 이 노승(老僧)의 뜻과 매우 일치한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즉 남양 혜충국사(南陽慧忠國師) 가 선객(禪客)에게(이런) 말씀을 하였다.
“요즈음 나는 몸과 마음이 한결같아 마음 밖에 다른 것이 없다. 그런 까닭에 전혀 나고 사라짐이 없다. 너희 남방(南方)에서는 ‘몸은 항상 됨이 없지만 신령스런 성품은 항상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반은 나고 반은 사라지고, 반은 나고 사라짐이 없다.”
또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닐 때 이런 견해를 자주 보았는데 최근에 더욱 성해지고 있다. 그들은 단경(壇經)을 ‘이것은 남방(南方)의 종지(宗旨)이다’라고 하여, 더러운 말을 첨가하고 섞어 성인의 뜻을 삭제하여 후세인들을 미혹케 한다.”
그대가 지금 얻은 이것은 바로 본문이고 잘못된 기록이 아니니, (남양혜충)국사로부터 꾸짖음을 면할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몸은 나고 사라짐이 있고 마음은 나고 사라짐이 없다는 뜻이 있다. 곧 “진여(眞如)의 성품(性品)이 스스로 생각을 일으킴이요, 눈․귀․코․혀가 가능히 생각함이 아니다.” 하는 뜻은 바로 (남양혜충)국사가 꾸짖는 바이다. 마음 닦는 사람은 여기에 이르러 의심하는 생각이 없지 않을 것이니, 어떻게 하여야 (의심을) 풀고 깊은 믿음을 내어 성인의 가르침이 유통케 하겠는가?」
담묵(湛黙)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회통(會通)의 뜻을 들을 수 있습니까?」
내가 말하였다.
「노승이 이 경(육조단경)에 의지하여 마음으로 맛을 즐겨 싫어하지 않았다. 그때 조사의 좋은 방편을 얻은 것이다. 그것은 조사께서 회양(懷讓)과 행사(行思) 등에게는 비밀히 심인(心印)을 전하시고, 밖으로 위거(韋據) 등 도인과 재가 천인에게는 모습 없는 심지계(心地戒)를 설하셨다는 것이다. 한결같이 진(眞)만을 말하여 속(俗)을 어길 수 없고, 또 한결같이 속(俗)만을 따라 진(眞)을 어길 수 없었다.
그러므로 반은 저들의 뜻을 따르고 반은 스스로 증득한 바를 칭하여 「진여(眞如)가 생각을 일으킴이지 눈․귀 등이 아니다」고 설한 말은 도인과 재가자들로 하여금, 먼저 몸 가운데 보고 듣는 성품을 돌이켜 관하게 하여 진여(眞如)를 요달(了達)하게 한 연후에, 바야흐로 조사의 몸과 마음의 한결같음의 비밀한 뜻을 보게 함이다.
만약 이와 같은 좋은 방편이 없이 곧장 몸과 마음의 한결같음을 설한다면, 눈으로 몸의 나고 사라짐을 보기 때문에 출가(出家)하여 도를 닦는 이들도 오히려 의혹을 일으키는데, 하물며 천여 명의 재가자들이 어떻게 믿고 받아들이겠는가.
이는 바로 조사(祖師)께서 중생의 기틀을 따라 이끌어 들이는 말씀이다. 혜충국사가 남방 불법의 병을 깨뜨림은 가히 무너진 기강(紀綱)을 다시 정리하고 성인의 뜻을 붙잡아 드러내 갚을 수 없는 은혜를 갚았다고 할 만하다.
우리들의 먼 후손들이 이미 비밀리 전한 뜻을 아직 몸소 받지 못했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드러내 전하는 문의 성실한 말씀에 의지하여 자신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비추어보아,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에 떨어지지 않아야 가히 허물을 벗어났다고 할 것이다.
만약 마음은 나고 사라지지 않는다고 관찰하면서 몸은 나고 사라진다고 본다면, 이것은 법(法) 위에서 두 가지의 견해를 내는 것이니, 성품(性)과 모습(相)을 융회하지 못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알라. 이 한 권의 신령스러운 글에 의지하여 뜻을 얻어 참구하면, 아승지의 긴 세월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보리를 증득하리라. (이 단경을) 간행하여 유통시키면, 어찌 큰 이익을 짓지 않겠는가?
담묵이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라고 하여, 이에 발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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